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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계산된 은전, 사면의 자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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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계산된 은전, 사면의 자의성

입력
1999.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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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광복절을 맞아 시국·노동·공안사범 등 1,100여명을 사면·복권시키는 등 총 3,000명 규모의 특별사면을 단행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광복절 특사는 특히 법원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및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돼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이 선고된 후 최근 재상고를 취하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가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해야 할 현 정부가 대표적인 정치적 부정부패 사범인 현철씨를 사면한다는 것은 이율배반」이라는 비판이라든지 「자신이 한 일을 진심으로 반성하지도 않았는데도 그를 사면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 와중에 김현철씨의 사면이 김 전대통령의 정치재개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혹어린 시각도 대두되고 있다. 보통사람의 눈으로 보더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현대국가의 법제중 가장 오랜 군주제의 잔재인 사면제도도 사용여하에 따라서는 입법이나 사법의 결함 또는 잘못되거나 지나치게 가혹한 법집행의 결과를 시정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관용과 화합의 손길이 될 때 사면은 예외의 미학으로 빛날 수 있다. 물론 그 예외의 미학은 어디까지나 사면권이 남용되지 않고 국민 대다수의 법감정에 의해 지지되는 때에만 성립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면제도는 그동안 너무 빈번히, 정치적 고려에 따라 자의적으로 사용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김대중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 보다도 빈번히 사면권을 행사한 대통령으로 꼽힌다.

이미 취임도 하기 전에 당시 김영삼대통령과 합의 아래 12·12, 5·18사건 관련자들을 풀어주었고, 이후 주요 기념일마다 「국민대화합」 「용서」 「화해」 등 이런 저런 명분을 내세워 사면을 단행했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사면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던 부정부패사범이나 반사회적 범죄자들이 「끼워팔기」식으로 포함되기 일쑤였고, 사면의 시기와 범위 역시 으레 정부와 집권당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국경일 사면」의 관행이 일상화되었다. 예외가 상례가 되었다. 검찰이 휘둘렀던 서슬퍼런 사정의 칼날이 무색할 만큼 적지 않은 수의 부정부패사범들이 여론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통로로 싱겁게, 겸연쩍게 풀려나왔다. 국민들은 어리둥절했다. 보통사람이 몰라도 좋은 고차원의 정치란 그런 것인가. 얼마전 신창원이 로빈훗이 아니라 악덕범죄자란 사실을 애써 강조하던 검찰과 경찰의 모습은 안쓰러웠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

대역죄인처럼 처단하고 나서 갑자기 언제 그랬냐는 듯 용서와 화합을 내세워 슬그머니 풀어주는 은전의 정략 때문에 선과 악이 혼동되고 범죄자와 의적이 분간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자녀들에게 부정부패사범들이 형사처벌을 받게 된 이유를 설명해준 부모들은 얼마 지나지도 않아 그들이 다시 대로를 활보하게 되는 현상을 다시 어떻게 납득시킬 것인가. 대통령과 정부는 요즈음 사람들이 진정으로 분개하는 이유, 세계 어느나라 보다 건전한 젊은이들이 사회에 헌신하려들지 않는 까닭이 무엇인가를 헤아려 주기 바란다.

/ 홍준형 서울대 교수·공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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