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인권운동가 몇 사람이 서울에 와서 기자회견을 했다고 한다. 물난리로 정신없던 무렵이다.회견 내용은 한국의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양심수를 전원 석방하라는 요구를 담은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우리 정부가 예고하고 있는 8·15 사면에 그들의 요구가 적극 반영되었으면 하는 것이 회견의 요점이다.
「양심수」라는 말은, 듣는 이에 따라서 미묘한 공명을 일으키는 단어가 된다. 『아직도 양심수 타령이냐』고 짜증스러워 하는 반응도 있을 것이고, 『민주화의 길은 과연 멀다』고 탄식을 앞세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보도되고 있는 8·15 사면안을 보면, 이번 사면 대상에 포함된 공안·시국 사범은 1,100여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어느 땐들 「양심수」가 없었을까만, 우리가 살아온 시대는 유난히 그들을 양산했던 것이 사실이다. 유신 폭압시대에 한 인권변호사가 남긴 시조 1수가 전해져 온다. 제목이 바로 「양심수」다.
벽돌도 차거니와 인심도 어나 보다
격장천리 소식이야 알듯말듯 하다마는
밤마다 잠못이루는 내 가슴이 아파라.
유신 쿠데타에 조직적으로 저항한 최초의 정치결사체(結社體)인 「민주회복국민회의」창립대회(1974.12.25)에서 3인 대표위원의 하나였던 이병린(李丙璘)변호사가 이 시조의 필자. 그는 한달도 못돼 기상천외한 「간통혐의」로 구속되어 「차거운 벽돌, 얼어붙은 인심」을 체험한다. 그리고 75년 12월 경상북도 오지의 시골변호사로 서울을 떠나면서 이 시조를 후배 인권변호사에게 남겼다고 한다. 호방·강직·담대한 풍모로, 대한변협회장이던 64년에 이미 군사정부에 의해 구속된 일이 있었던 그는, 그후 10년여 시골에 묻혔다가 86년에 쓸쓸한 부음을 전해온다.
「양심수」를 말하다가 곁길로 들어섰지만, 8·15 사면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최근 실형이 확정된 김현철씨가 형집행 절차도 받지 않은채 사면대상에 포함될 것이냐에 집중되어 있다. 정부 여당은 「김현철 사면」을 기정사실화하고 여론의 순화를 기대하는 듯이 보인다. 혹독한 비난을 받더라도 PK 민심을 붙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인지 모른다.
분명히 할 것은 김현철씨의 「범죄」다. 알선수재·조세포탈은 그가 정치범, 또는 양심범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 있음을 말해 준다. 수사과정과 재판과정에서 92년 대선 잔여금 70억원을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거듭 약속한 사실을 그가 지금 당장 이행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즉각적인 사면을 받아들일 국민적 공감대는 아직 멀다. 용서와 화해는 언제나 좋은 것이지만 국민의 건전한 법감정이나 법의 권위마저도 훼손하는 사면은 권한의 위험한 남용이다. 국민들은 김씨로부터 진심으로 뉘우치는 말을 듣거나 그런 태도를 본 일이 없지 않은가.
국민의 속을 거북하게 하는, 영 소화되지않는 일들은 국민의 어리숙한(!) 눈에도 쉽게 뜨이는 정치적 계산이다. 내년 봄으로 총선이 임박했다고 해서, 어느 지역을 상대로 하는 득표 전략이라는 이유로, 여기서도 인심을 얻고 저기서도 인심을 꿰차는 무차별 무정견 정치행태가 과연 옳은 모습인가.
전국 정당화는 집권당으로서 성취해야 할, 특히 지역주의의 폐해를 겪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임에 틀림없지만, 그렇다고해서 원칙마저 저버린 듯한 「영입」과 「확대」와 「뇌동」은 국민으로서 소화시키기 어려운 일들이다.
때마침 8월의 문화인물로 매천 황현(黃玹·1855~1910)이 기려지고 있음을 본다.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던 매천은 국망(國亡)을 맞아 자결하면서 남긴 절명시(絶命詩)가 후인들을 언제나 정신들게 한다. 그 중에서도 절구(絶句)는 모두 4편의 시 가운데 제3편 끝 연인 秋燈掩卷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이다.
「가을 밤 등잔불 아래 책 덮고 옛 일을 생각하니, 세상에 배운 사람 노릇이 이토록 어렵구나」
그는 따로 남긴 유훈에서 나라가 망했는데 죽는 선비가 하나 없어서야 될 말이냐고도 썼다. 중요한 것은 「배운 사람 노릇」이다. 이 말을 「큰 정치인 노릇」으로 바꾸어도 좋겠다.
지금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를 위한 정치, 권력 추구가 전부인 정치를 할 계제가 아니다. 한 전직 대통령의 기념사업회를 명예회장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나 김현철씨를 사면하는 것이 「큰 정치」는 아니라는 느낌이다. 그보다는 더 큰, 인권을 위한 큰 발걸음을 떼야 한다. 아직도 해야할 「큰 정치인 노릇」 이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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