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강원 북부지역 집중호우와 전국을 골고루 훑어간 태풍피해 복구작업이 한창이다. 군부대 장병들, 공무원들, 자원봉사자들이 주민들과 함께 땀흘리는 모습이 오랜만에 공동체의 일체감을 느끼게 한다.정부도 재빨리 재해예비비 등을 포함한 7,850억원의 예산을 응급복구비로 책정한데 이어 추경예산에 복구비용을 늘려 주민들의 복구활동을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주민들은 별로 달가워하는 것같지 않다. 피할 수 있었던 재해를 또 당하고 수습을 서두르는 모습이 그저 연례행사처럼 보이는 것인지, 크게 기대할 것도 없다는 표정들이다. 정부 각 부처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수재민 지원책에도 반응은 시큰둥하다.
수재민들은 겉만 번지르르한 여러가지 지원책보다 책정된 예산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집행해 달라고 주문한다. 물 빠진 그날부터 당장 급한 복구지원비와 융자금이 몇달씩 지난 뒤에 나오니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항변이다. 정확한 피해조사를 근거로 구호나 복구예산을 신청해 돈이 내려오면 일일이 피해사실을 확인, 대조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수재민들 손에 돈이 들어가려면 오랜 시일이 걸린다. 지난해 수해가 심했던 경기 파주와 충북 보은에서는 10월까지도 복구예산이 단 한건도 집행되지 않은 사실이 정부 자체조사에서 드러났었다. 심지어 창고에 쌓여있는 구호품이나 외부 지원금품도 제때 풀지않아 이번에도 벌써 원성이 들려온다.
일선 행정기관들은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먼저 지원하고 나중에 근거를 보충하는 「선집행 후정산」 재량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상급기관의 감사때문이라니 그들만 탓할 수도 없다.
예산집행의 공정성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해마다 담당공무원들과 업자 또는 주민들이 결탁해 복구비와 구호예산을 빼돌리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 96년 철원에서는 동일한 피해농지에 3차례나 복구비를 지출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지번에 돈을 준 군청 간부가 구속된 일이 있었다. 지난해 파주에서는 날조된 농지복구 서류를 근거로 돈이 지급되었고, 서울에서는 가짜수재민에게 지급한 복구비를 나누어먹은 구청 공무원이 구속되기도 했다.
서류만능의 관료주의가 빚어낸 폐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수재민들에게 이중고를 떠안기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고통을 겪는 이재민들을 살려놓고, 집과 축사와 공장을 잃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복구하게 한 뒤에 정산을 할 수 있도록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이 급하다. 평시에도 국민이 살기 편하도록 돕는 것이 행정의 기본이다. 하물며 재해를 당한 사람들에게야 말해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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