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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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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교훈

입력
1999.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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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영국케임브리지대 교수-6월 초 치뤄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선거에서 집권당 아프리카 국민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 : ANC)가 3분의 2에 가까운 압도적 지지를 얻어 재집권했다. 80년대 말만 해도 영국의 전 수상 마가렛 대처 여사가 『남아공에서 아프리카 국민회의가 집권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꿈나라(cloud cuckoo land)에 사는 사람이다』라고 했던 것에 비추어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현대 남아공의 역사는 17세기 초 케이프 타운(Cape Town)에 화란계 이민들이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당시 아시아 항로의 핵심 기착지인 케이프 타운을 탐 낸 영국은, 화란과의 일련의 전쟁을 통해 1814년 케이프 타운 지역을 점령했다. 영국인의 지배에 반발한 화란계 주민들은 1830년대 말부터 땅이 척박하여 영국인이 원하지 않던 동북부 내륙으로 이주하여 1850년대에는 2개의 독립 국가들을 수립한다. 그러나 1860년대 이후 이 지역에서 대량의 다이아몬드와 금이 발견되면서, 영국은 결국 1899년부터 1902년 까지 「보어 전쟁」(Boer War, 보어란 화란어로 농부라는 뜻)을 일으켜 화란계(소위 아프리카아너-Afrikaaner)의 독립 국가들을 말살하고 만다.

이렇게 백인들끼리 영토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흑인들은 노예로 전락하거나 백인들이 불모지에 세운 「보호 구역」에 갇혀 참정권도 없이 빈곤에 시달리며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게 된다. 아프리카아너계의 백인들은 이것도 모자라 1948년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를 주장하는 국민당(National Party)을 집권시켜, 아파트하이드(Apartheid, 화란어로 분리라는 뜻) 정책을 통해 법적으로 백인과 유색인종의 결혼 및 성교를 금지하고, 거주 지역과 교육기관을 분리하며, 유색인종의 취업을 제한하는 등 고강도 인종 차별 정책을 폈다. 엄청난 유색인종 인권 탄압과 폭력도 자행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50년대 인권 변호사로 활약하던 만델라는 1964년 종신형을 받고 30여년에 가까운 감옥 생활을 하면서도 인종 차별 철폐와 민주화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반(反) 아파트하이드 투쟁의 정신적 지주 노릇을 했다. 계속되는 국내적 저항과 국제 사회의 압력속에서 데 클럭(de Klerk) 대통령은 1991년 만델라를 석방하고 아프리카 국민회의를 합법화했으며, 1994년 약속대로 백인만이 아닌 전국민이 참가하는 총선을 치뤄 아프리카 국민회의에 정권을 이양했다.

지난 5년간 아프리카 국민회의는 예상을 뒤엎고 매우 온건한 인종간 화합 정책을 펴 왔다. 이러한 정책은 사회 평화를 가져왔지만, 지나치게 백인들의 기득권을 종중함으로써 흑인들의 생활 개선과 그를 통한 사회 통합에 실패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아직도 남아공은 세계에서 빈부 격차가 제일 크고, 공식 실업률이 35%도 넘으며, 흑인 중산층은 극소수에 불과한 형편이다. 그런데도 백인 소유의 대기업들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국내 투자는 줄이고 해외로 나돌면서, 그렇지 않아도 1980년대 국제 제재와 정치 불안으로 멍이 든 경제를 더욱 시들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때, 흑인들 이번 선거에서도 아프리카 국민회의에 표를 던진 것은 현상에 만족해서라기 보다는 별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타보 음베키(Thabo Mbeki) 신임 대통령은 만델라 전대통령과 같이 국민의 절대적 추앙을 받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정권이 앞으로 몇년 안에 가시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면 흑인들의 불만은 행동으로 불거져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남아공의 이야기는 먼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과거의 정치적 상처들,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위기 이후 벌어져 가는 계층간의 격차로 인하여 갈등의 골이 깊어 가는 우리에게 사회 통합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주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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