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린 배를 채우려면 족히 2시간은 서서 기다려야한다. 운동장 이곳저곳은 비에 젖어 질척대고 급식소 인근 화장실에서는 냄새가 진동한다.스티로폼을 깔고 모포를 덧씌운 채 교실 한 켠에서 새우잠을 청하는가 하면 아예 자리가 모자라 복도 한 켠에 책상을 붙이고 그위에다 스티로폼을 깔고 눕기도 한다. 이재민 3,000여명이 북적대는 경기 파주시 문산초등학교는 외형만 봐서는 전쟁터에 등장하는 난민수용소와 똑같다.
하지만 꽤나 혼란스러워보이는 이곳에서 새치기나 고성이 오가는 불상사는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힘을 냅시다』는 격려의 말이 오가기까지 한다.
너나 할것 없이 울화통터지는 사람들만 모인 곳이라 분풀이성 삿대질이 오갈만도 하건만 오히려 『물이 빠지면 이것부터 챙겨보자』는 등 삼삼오오 둘러모여 복구대책을 논의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이재민 이정복(39)씨는 『3년전에도 수해를 겪었지만 이전과는 달리 서로 격려하며 어려움을 이겨내자는 따스한 분위기』라며 『3년전 수해의 경험이 성숙한 자세를 만들어준 것 같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때론 경험이 엉뚱하게 이용되기도 한다. 문산읍 수해구조활동에 나선 파주소방서 119소방대는 침수 이틀째에 접어들면서 일종의 허위신고때문에 골치를 알아야 했다. 다급하게 주민고립신고가 들어와 보트로 물살을 헤치고 출동해보면 고층아파트 거주주민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올라탄다.
침수지역을 벗어나 이들을 내려놓고 『대피소로 가시죠』라고 권유하면 이들은 슈퍼마켓을 찾아 먹을 물과 라면 등 비상식량을 한보따리 사들고서 이렇게 말한다. 『아저씨 다시 가시죠』
한때 침수지역안으로 다시 들여보내 줄 수 없다는 119구조대와 이들간에는 삿대질이 오가기도 했다. 이들 역시 다년간 수해경험을 통해 생존전략을 익힌 셈이다. 그래서인지 한 119구조대원은 『고립신고까지 해가면서 119구조대 보트를 택시마냥 이용하는 것을 보면 울화통이 터지지만 이해는 된다』고 말했다.
/김현경기자 moo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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