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이 내리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게 공연이다. 남는 것은 추억 뿐. 최진용씨가 30년 넘게 모은 7,000권의 각종 공연 팸플릿은 그대로 추억의 앨범이다. 가장자리가 닳고 누렇게 빛바랜 팸플릿을 들추면, 지금은 원로가 된 예술가들의 젊은 시절 모습이 새삼스럽다. 요새 감각으로는 촌스럽게 보이는표지 디자인이나 속지 광고에서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실감한다.샹송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초상이 그려진 77년 극단 현대극장의 뮤지컬 「빠담 빠담 빠담」 팸플릿. 그는 당시 주연배우 윤복희가 공연 중 쓰러져 링겔을 맞고 1시간 반만에 다시 등장하는 것을 봤다. 그 공백 동안 코미디언 곽규석이 원맨쇼로 사람들을 웃겼던 것을 기억한다.
80년대 초반, 극단 자유의 명배우 장건일이 공연하다 엘칸토 예술극장 무대에서 쓰러진 것도 봤다. 그는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스타가 된 배우 윤석화의 데뷔작 「선인장꽃」, 제1회 대한민국 연극제, 세종문화화관 개관기념제 팸플릿…. 하나 하나가 소중하다.
오랫동안 무대를 바라본 그가 발견한 문제점들.
『우리 연극의 제작 시스템이나 홍보는 아직까지도 대체로 주먹구구인 것 같아요. 제작비는 날로 올라가고 관객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몇몇이 돈을 모아 학생극 하던 옛 방식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연극 발전이 더딘 게 아닐까요』 무용에 대해서도 한마디 한다. 『예나 지금이나 무용 공연은 선후배 가족잔치를 못벗어나는 게 참 답답합니다.
안은미처럼 튀는 개성에 팬을 거느린 무용가가 나와야 하는데…. 안무자가 의상·무용·미술·음악·조명까지 다 챙기는 것도 문제예요. 각 분야 최고들이 달라붙어도 공연이 잘 될까 말까 한데…. 제1회 대한민국무용제 때 음악상·미술상 제도가 생기니까 무용잔치를 하면서 아까운 돈을 왜 딴 데 주느냐는 반발이 있었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무용가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의 국립중앙극장장 임기는 반 년. 내년부터 국립중앙극장이 민간인 관장 체제의 책임경영기관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는 가만히 앉아서 시간만 때우고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평소 공연장을 다니면서 아쉽게 느꼈던 점 100가지를 정리, 하나씩 고쳐나갈 계획이다. 관객을 위해 극장 환경을 개선하는 한편 전속예술단을 비롯한 직원의 사기를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극장 화장실을 호텔 수준으로 만들어 쾌적하게 하는 것도 그 중 하나. 지금 공사가 한창이다. 조용히, 그러나 차근차근 움직여서 두세달 뒤 달라진 국립중앙극장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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