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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용 국립극장장] 공연이 있는곳엔 '그'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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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용 국립극장장] 공연이 있는곳엔 '그' 가 있다-

입력
1999.08.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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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마다 찾아다니는 못말리는 애호가」. 각 신문사의 공연 담당 기자들은 가는 데마다 그가 있더라며 별난 사람이라고 말했다. 6월11일 국립중앙극장장에 부임한 최진용(52)씨.소문 이상이다. 공연장 다니기 30여년, 각종 공연 팸플릿만 7,000개, 연극·음악·무용·영화·문학·건축·미술·영화 등 문화예술 전문서적만 3만권. 공무원 생활 32년째, 아직 자가용도 없는 그의 재산목록 1호다.

서울 혜화동, 언덕을 한참 올라가서 다른 집 뒤에 처박혀 볕도 잘 들지않는그의 집. 집안은 보이느니 온통 책이다. 마당이 없는 2층짜리 단독주택, 그와 아내, 대학생인 아들과 딸 네 식구가 사는 1층 17평 공간에 구석구석 책이 쌓여있다. 책장마다 온전한 게 없다. 천정까지 닿은 책 무게에 눌려 주저앉고 비틀려서 터질 것 같다. 가뜩이나 좁은 집안은 책에 포위돼 너댓명이 앉을 자리도 마땅찮다. 아들 딸은 발 좀 뻗게 책 그만 들여놓으라고 성화다.

7,000개의 공연 팸플릿은 지하 보일러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몸을 뒤로 잔뜩 젖혀 눕다시피 해야 간신히 기어들어갈 수 있는 방공호급 지하실. 지난해 보일러가 터지는 바람에 30년 넘게 잘 간수해온 팸플릿들이 물에 젖었다. 그동안 10여 차례 이사할 때마다 4톤 트럭 두 대에 이 많은 책과 팸플릿을 싣고 다녔는데, 이제는 간수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그의 문화예술 편력은 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60년대 말 명동 국립극장과 충무로 연극회관을 드나들면서부터다. 고교 졸업 이듬해인 67년 당시 공보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 줄곧 문화부를 떠나지 않고 출판·어문·영화·미술 분야를 한바퀴 돌았다. 현장을 알아야 행정을 제대로 할 것이라는 판단에, 각종 공연·전시마다 쫓아다녔다. 70년대 한창 열을 올릴 때는 일주일에 열편씩 봤을 정도. 그러다보니 점점 좋아하게 됐다.

그는 자칭 「뒷풀이 전문가」. 거의 매일, 문화예술인들과 밤늦도록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문인, 영화인, 미술가, 연극인 등 지금껏 만난 사람이 6,000~7,000명. 퇴직하면 그들과의 만남을 책으로 쓸까 하고 자료를 정리 중이다. 「술값은 언제나 내가 낸다」는 원칙 때문에 박봉의 살림이 쪼들린 건 불문가지. 책 사고 공연 보고 술 사느라 저축을 못했다. 그런 와중에 야간대학을 거쳐 대학원까지 나왔다. 『의료보험이 없던 시절엔 식구 중 누가 병이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였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나 싶다』며 웃는다.

그의 관심은 가히 전방위적이다. 연극에 빠져 70년대 한때 월간 「한국연극」에 글을 쓰기도 하고 95년 「공연과 이론」모임으로 젊은 연출가들과 만났다. 88년 세종문화회관에서 동구권 영화가 처음 비공개 상영됐을 때는 아예 휴가를 내서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하루 5~6편씩 영화를 봤다. 그런 뒤 새벽 2~3시까지 영화인들과 어울리고 아침이면 다시 나와 영화 보고,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지만 좋아서 한 일이라 피곤한 줄도 모르겠더라고 회상한다.

95년에는 당시 문체부 관리들을 중심으로 「우리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모임을 만들어 매주 한 편 이상 단체로 극장을 찾았다. 이때 영화진흥과 직원들과 함께 「한국영화의 흐름과 새로운 전망」이라는 책도 썼다. 미술 전시회는 점심시간마다 문화부 청사에서 가까운 인사동, 사간동 화랑가를 다니며 봤다.

최근 몇년은 무용에 열중, 작년 한글을 주제로 한 무용 작품의 대본을 쓰기도 했다. 그런 그가 가장 자신없는 분야는 서양 클래식음악. 『국악은 그런대로 피부에 와닿는데, 오페라나 음악회는 숱하게 다녔어도 여전히 어렵게 생각된다』며 『음악에 관한 한 나는 아직 야만인』이라는 자평.

요새도 그의 공연장 나들이는 계속되고 있다. 국립국악원에서 김현숙 가야금독주회, 문예회관에서 연극 「툇자 선생과 거목」, 예술의전당에서 악극 「가거라 삼팔선」등을 봤다. 책방 순례도 여전하다. 며칠 전 99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과 박상우, 공지영의 신작소설을 샀다. 『책을 열심히 사기는 하는데 열심히 읽지는 못한다』며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일주일에 적어도 두 권은 읽는다는 게 자신과의 약속. 자신의 책상조차 없는 좁은 집에서 아무데다 작은 밥상을 펴고 책을 본다. 그동안 5,000권 정도는 지방학교나 마을에 보냈다. 언젠가 나머지 책과 팸플릿을 공공기관에 기증할 생각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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