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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물난리] 황톳물.죽은소.헬기굉음 마치 '전쟁폐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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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물난리] 황톳물.죽은소.헬기굉음 마치 '전쟁폐허'

입력
1999.08.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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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강원 고립마을 르포 -거센 탁류속에 고립됐던 경기북부와 강원의 마을에 3일부터 구호의 손길이 닿기 시작했다. 양초불에 의지하며 암흑을 견디고 있는 고립마을 주민들을 이날 본사 취재진이 찾았다.

◆연천 장남면

황톳물 뱃길 20리, 흘째 고립된 연천군 장남면으로 가는 뱃길은 망망한 바다였다. 3일 오전 고무보트 편으로 찾아간 장남면 주민들은 전기와 수도물이 끊기고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충격과 공포로 몸을 떨고 있었다. 주민들은 백합 초등학교 고량포 분교 운동장과 면사무소 등에 모여 구조대원을 멍한 눈으로 바라봤다.

취사에 사용하는 가스가 떨어지고 쌀마저 동나면서 이젠 끼니마저 걱정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몰린 것이다. 이날 장남면 사무소와 임시헬기장에선 3명의 응급환자와 출산을 앞둔 주부, 그리고 장염으로 위급한 16개월 된 사내아이가 군과 소방 당국 헬기의 도움으로 전곡읍 백병원으로 후송됐다.

상공은 구호물품과 환자를 후송하는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제11항공단 소속 헬기 12대가 어지럽게 날아다니고 소방서 고무보트 6척도 분주히 돌아다녀 전시 작전지역을 방불케 했다.

마을에서 내려다보이는 임진강 지류 사미천에는 기름띠가 길다랗게 형성돼 있었으며 아직도 물이 빠지지 않아 도로와 강, 농경지가 구별조차 할 수 없었다.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제방 사이로 젖소 사체가 맴돌고 있었다.

주민 김명득(52·원당3리) 『태풍이 올라 온다는 게 정말이냐』고 반문하면서『이젠 어떻게 하냐』며 울먹였다. 원당2리 이장 조윤재(40)씨는 2일 숨을 거둔 임상순(96) 할머니 댁에 구호품 생수를 모두 보내 다른 주민들은 한방울도 마시지 못했다며『6·25때 참전한 아들을 잃은 할머니가 가족하나 없이 외롭게 숨을 거두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장남면 보건지소 김진만 공중보건의는 가슴이 답답하다며 불면증을 호소하는 주민이 크게 늘었다』며 홍수로 인한 집단 히스테리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냉장 보관을 요하는 장티푸스 접종약등 의약품을 보관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장남면 면사무소에서는 수해가 나던 지난 7월 31일 밤부터 자신의 고깃배로 젖소 30마리와 세가구 10여명의 가족을 구한 남상윤(42)씨가 사흘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연천=안준현기자 dejavu@hk.co.kr

◆철원 자등리

지반이 떠내려가 쓰러진 가옥, 새로 뚫린 개울물에 설거지를 하는 부녀자들, 무너진 집 근처를 넛놓은 듯 헤매는 할머니, 쓰레기가 걸려 「댐」이 돼버린 다리.

나흘째 섬처럼 고립된 강원 철원군 서면 자등리는 융단폭격으로 폐허가 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3일 오전 11시께 군헬기가 구호물품을 싣고 도착한 것이 처음으로 닿은 외부의 손길. 800여세대 2,300여 주민은 자등3리 서면초등학교, 노인당 등 3곳으로 집단대피해 빗물과 빵을 먹으며 지금껏 견뎌왔다.

부산수퍼 등 마을 구멍가게는 라면과 양초등 생활필수품을 무료로 나눠주며 구호를 기다렸다

주민 조모(60)씨는 『소들이 나흘째 굶고 있고 아기들도 분유맛 못본 지가 오래다』고 말했다. 김모(57·여)씨는 『물살이 거세 불도저의 기계삽으로 사람을 나르기도 했다』며 위급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3년전 수해때 집이 침수됐지만 병원에 입원해있어 피해 신고를 못하고 복구비도 못받았던 이모(57·여)씨는 『큰 비 때마다 쥐꼬리만한 복구비로 공사하려니 빚더미에 나앉았다』고 말했다.

자등천을 따라 나란히 붙어있는 6개 마을은 신철원에서 춘천까지 연결하는 463지방도 건설현장에서 흘러내린 토사로 피해가 가중됐다. 산을 깍아 터널을 뚫는 등 무리한 공사와 수방대책 부재로 떠내려온 흙과 돌들이 하천 바닥에 쌓여 물의 흐름을 방해해 마을로 방향을 틀게 만든 것.

함께 집이 무너진 이씨의 이웃 나모(65)씨는 『47번 국도의 다리들이 박스형이라 교각이 많아 물에 쓸려내려온 나무들이 그물형태를 만들어 끝내는 물길을 막아버렸다』고 원망했다.

마을 주민들은 『몇 개 다리는 교각을 없애 버려 그 근처는 이번 비에도 안전했다』며『사정을 잘 아는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복구공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철원=김태훈기자 onewa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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