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연·동국대교수·정치사상-언제부턴가 3김씨를 싸잡아 매도하는 3김청산론이 준동하기 시작하였다. 3김청산론의 원조는 김동길교수의 「3김낚시론」이었을 것이다. 김교수는 5공시절 칼럼을 통해 『3김씨는 정치 그만두고 낚시나 가라』고 주장했다. 이 때는 양김씨가 반(半) 지하에서 군사독재와 사활을 건 싸움을 하던 때였다. 당시 그의 발언은 민주화세력의 격렬한 분노를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3김청산론의 두 번째 등장은 김영삼정부가 양김의 도전에 직면하여 이들을 배제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김영삼대통령이 세대교체론을 내걸고 양김씨와 동반 퇴장하는 「물귀신 작전」으로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정략의 산물이었다. 이 때 3김 청산론의 이데올로그는 문민정부 「21세기위원회」의 전문위원이었던 한 교수였다. 그의 논리는 3김씨를 싸잡아 「부르주아 보수주의자」로 매도하던 일부 급진적 지식인 집단의 균형과 잡히지 않은 진보 마인드를 문민정부의 보수적 권력논리와 교묘하게 결합한, 알고 보면 매우 사특(邪慝)한 주장이었다.
김영삼 전대통령의 정치재개 선언을 기점으로 「후3김시대론」과 함께 등장한 요즘의 3김청산론은 문민정부 때 3김청산론에 열을 올리던 교수와 언론인들이 다시 일으키고 있다. 3김청산을 겨냥한 3김정치론은 3김씨를 지역주의, 보스정치와 사당(私黨)정치, 후계자를 육성하지 않는 권력독점욕 등의 죄목으로 단죄한다.
그러나 이 말들은 자세히 뜯어 보면 말장난에 불과한 것들이다. 우선 3김이 서로 연합 결별을 반복하며 싸운다는 「3김정치」라는 말부터 그렇다. 3김 정립(鼎立) 정치는 80년 「서울의 봄」 때 잠깐, 92년 대선 때 잠깐, 95년 김대중씨의 정계복귀 이후 2년간 뿐이다. 나머지 시기는 「3김시대」가 아니라 「박정희시대」 「전두환시대」 「노태우시대」였을 뿐이다. 이 시기에 3김은 탄압받는 야당의 대선후보나 야당총재, 지하세력이었다. 한 김씨가 대권을 잡아 김씨의 시대가 열린 것은 겨우 6년밖에 안되었다.
지역주의를 3김 탓으로 돌리려는 것도 인과(因果) 전도이다. 지역주의의 원인은 군사독재 체제이고 3김의 지역적 정립은 그 결과이기 때문이다. 보스정치, 사당정치 운운하는 것도 150여년 서양의 명사(名士) 정당시대를 회고하면 짧은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정당사에서 무리이다. 걸출한 명사없이 서양 정당도 출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후계자」를 키우지 않는다는 소리는 헛소리이다. 대권후보는 전임자에 의해 키워질 수 없는 법이다. 유권자의 눈에 누구의 「졸개」로 비치는 「키워진」 후계자는 자립적인 후보에 대해 경쟁력이 없다. 대권후보는 투쟁 속에서 스스로 크는 법이다. 오히려 자립적인 대권후보들이 너무 많은 게 문제일 것이다. 3김 중 1인은 산업화를 위한 권위주의 캠프에서 그래도 「선(先)산업화, 후(後)민주화」의 슬로건을 반복한 비교적 온건파였고, 나머지 두 사람은 권위주의와 싸워 민주주의를 이 땅에 이룬 사람들이다. 역사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한국의 「근대화」과업을 달성하는 데 기여한 이들의 공을 기릴 것이다.
더구나 3김 중 양김은 지금 주권자로부터 대권을 위임받아 개혁통치를 하고 있다. 이들을 끌어내리려 「후3김시대」운운하는 것은 일종의 반(反)개혁적 저항에 속한다. 게다가 사실에 부합되지도 않는다. 양김의 맞수는 김영삼 전대통령이 아니라 이회창 야당총재인 것이다. 경제를 망친 김 전대통령이 정계복귀를 선언했다고 해서 「후3김시대」가 오는 것이 아니다. 국가원로인 김 전대통령의 이 그릇된 정치와 행태를 비판해야할 일부 언론이 지금 「후3김시대」운운하며 오히려 이를 호도(糊塗)하고 현직 대통령과 총리를 싸잡아 격하시키는 죄악을 저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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