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양희 시집 「오래된 골목」(창작과비평사 발행)강물 속 수초들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괴롭고도 어려운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물 속에서 사는 수초들이 물같이 살고 있지 않고 물 먹고 살고 있는 것 같아서다. 물같이 사는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어떻게 하면 물같이 살 수 있는지 물에게 길을 물어 본다. 평소에 물을 무척 좋아하는 내가 내 시를 붙드는 한순간에 빼놓을 수 없는 물음이다. 물의 소용돌이나 힘찬 물소리는 내 발상을 거꾸로 뒤집는 에너지이기도 해서 물에게 길을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물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물은 절대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낮게 낮게 흐르다 큰 바다에 가 닿는다고, 깊은 강물일수록 소리없이 흐른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또 이렇게도 말한다. 물은 경계가 없다고. 물 먹고 사는 것과 물같이 사는 것은 다르다고 물같이 살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고 누가 말했었지요/ 그래서 나는 물 속에서 살기로 했지요」(이하 「물에게 길을 묻다_수초들」에서). 이건 수초에 대입된 나의 역설이다.
이 세상의 어디에서 물같이 사는 삶을 꿈이라도 꿀 수 있는가. 그래도 그 꿈을 놓지 않기 위해 나는 물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며 수초들을, 물을 응시한다. 「날마다 물 속에서 물만 먹고 살았지요/ 물 먹고 사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요」. 그럴수록 물의 소리는 나의 기운을 북돋운다. 죄없이 죄인처럼, 물 먹고 살아야 하는 삶을 견뎌내는 외로운 사람들을 떠올리며 나는 그렇게 내 시의 한순간을 붙잡았다. 「물 먹고 산다는 것은 물같이 산다는 것과 달랐지요」. 그러나 물에게 길을 묻고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는 물에게 경외심을 느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물같이 사는 것이었지요/ 그때서야 어려운 것이 좋을 수도 있다는 걸 겨우 알았지요」. 이 변질되어가는 시대에도 물같이 살아갈 수 있다면 깊은 절망에 빠지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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