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폐공사 노조파업을 유도했다는 혐의로 구속된 진형구(秦炯九) 전 대검공안부장은 검찰에 소환될 때나, 구속이 집행될 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굳은 표정에 약간 충혈된 눈은 무언가 할 말을 가득 담고 있었지만, 어쩌다 자기도 모르게 한마디라도 하게 될까봐 오히려 입술에 힘을 주고 있었다. 평소 다변(多辯)인 그의 이런 모습은 자신의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강한 항의의 표시로 보였다.
진씨는 이번 사건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고검장 승진이 물거품이 됐고, 무엇보다 30년 가까이 봉직한 검찰을 떠나야 했다. 그는 이번 일로 고립무원의 지경에 처했다. 모든 이들이 그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심지어 친정인 검찰에서도 그를 변호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진술을 한 강희복(姜熙復) 전 조폐공사사장은 고교 2년 후배이자 10여년간 친목회를 함께 해온 절친한 친구이다.
검찰이 밝힌 그의 혐의는 분명 지나친 데가 있었다. 그는 임금협상안에 노조가 수용할 수 없는 내용을 추가하라는 지시까지 했다고 한다. 직분을 망각한 분별없는 행동이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진씨의 행동을 그의 잘못으로만 돌리는 것은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잠시 지난해 9, 10월로 기억을 더듬어 보자. 당시 「구조조정」은 우리사회의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절대적 명제였다. 사업장 사정은 따져보지도 않고 모두가 구조조정만이 살 길이라고 외쳤다. 정부가 기치를 들었고, 언론은 선봉장이었다.
진씨의 행동은 이러한 사회분위기의 산물이었다. 당시 조폐공사의 구조조정에 정부도 언론도 박수를 보냈다. 진 전부장이 예견했듯이 조폐공사 문제는 공기업 구조조정의 「모범 선례」로 꼽혔다. 그의 「취중 고백」이 없었다면 진실은 영원히 묻혔고, 그가 한 일은 「내부적 성공담」으로 회자됐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정부와 언론, 우리 사회는 진 전부장과의 「공범(共犯)」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나의 목표가 세워지면 다른 목소리는 설 자리를 잃어버리는 사회. 「제2의 진형구」가 생기지 않는다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김상철기자 s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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