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가 무너졌다. 국토관리의 커다란 축이 무너져 내렸다. 결국 이것은 토지공개념의 붕괴라 할 수 있다. 토지공개념이란, 토지의 공공적 가치에 대한 선언적 개념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토지는 사유재산이다. 그러나 일반상품과는 다르다. 우리의 국토는 단 하나이며 유한한 자산이며, 우리의 삶터이다. 개인의 사유권을 초월하는 공익적 자산인 것이다. 따라서 땅에 관한 한 개인의 재산권도 공공복리의 증진을 위해서는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토지공개념의 요체이다. 그런데 이번 그린벨트의 해제는 토지의 재산권을 우선하는 정책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지난 개발연대동안 우리는 토지열병에 시달려 왔다. 특히 80년대 후반에는 땅값이 겉잡을 수 없이 뛰고 개발의 열풍으로 난(亂)개발이 작은 국토를 휩쓸었다. 망국병이었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전 국민의 공감과 함께 탄생한 것이 토지공개념이었다. 땅이 좁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옛부터 토지공개념이 일반화해 있고, 토지의 소유권이나 이용권에는 우리보다 훨씬 엄격한 제한을 가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이란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소위 「3법」이라고 부르는 토지초과이득세, 개발부담금 및 택지소유상한제이다. 이들 제도는 그동안 계속 기득권층으로부터 공격의 대상이었다. 실현되지 않은 소득에 대한 세금이라거나, 개발억제의 부작용뿐이라거나, 또는 세계에 유례없는 혹독한 법이라는 비판이었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하나하나 퇴장하였다. 토지초과이득세는 위헌소지 판정을 받았고, 개발부담금은 경제를 망친 범인이라는 죄목으로 유보되었고, 최근에는 불과 수천명 밖에 안되는 부자를 상대로 한 택지소유상한제도 폐지되었다. 지금 토지공개념은 빈 껍데기만 남았다. 화려한 출발에 비하면 초라한 몰골이다. 가장 개혁다운 토지정책의 개혁이었는데, 초라한 토지공개념의 퇴장은 정치논리에 밀려 퇴장한 금융실명제와 궤를 같이 한다.
몇가지 제도는 없어졌다 해도 이 땅에 뿌린 토지공개념의 싹은 아직 살아 있을 줄 믿었다. 토지는 공적 자산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친환경적이고 미래 지향적으로 이 좁은 국토가 관리되리라 믿었다. 미래와 우리 후손들에게 좁지만 잘 보존된 국토를 남겨주려는 정신은 살아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린벨트가 해제되었다. 이것은 토지공개념의 폐기를 뜻한다.
자기의 재산권이 최대로 존중되는 방향으로 허용한다면 이 땅은 난개발로 뒤덮힐 것이다. 누가 도시계획을 존중하고 누가 토지에 관한 규제를 반가와 할 것인가. 공원도, 상수도보호구역도, 군사시설보호구역도, 보존녹지도 모두 도전 받을 것이다. 그린벨트를 앞으로 도시계획으로 규제한다고 하나 도시계획은 또 다른 재산권의 제약없이 만들어질 수 없다.
지금 우리는 토지정책의 기로에 섰다. 국토환경은 경제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가치를 지닌다. 최근 건설교통부는 향후 2020년까지의 국토개발정책을 발표했다. 선진경제로 가기 위한 수많은 지역개발사업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국토 관리에 대한 비전과 철학은 보이지 않는다.
토지소유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성한 권리다. 그러나 국가가 공익을 위하여 토지를 규제하는 것도 국가의 신성한 권리다. 나는 토지공개념의 정신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에게 유효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 국토 위에 자연과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시를 쓰고 싶다.
/이건영 아주대 환경도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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