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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가정] '사랑은 지독한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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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가정] '사랑은 지독한 혼란'

입력
1999.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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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가 터지자 사랑이 처방전으로 떠올랐다. 불안한 사회의 마지막 피난처는 결국 홈 스위트홈 뿐이라고, 신문 방송 광고 여기저기서 가족간의 사랑을 강조하는 열렬한 캠페인이 벌어졌다.그러나 이혼률은 거꾸로 올라갔다.처음부터 부적절한 처방이었을까.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과 그의 아내인 사회심리학자 엘리자베트 벡_게른샤임의 책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새물결 발행·1만원)을 보면 그런 결론을 내릴 수도 있겠다. 『결혼과 가족 생활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하늘 위에 구름사다리를 놓고 구름 속에서 뻐꾸기 둥지를 꾸미려는 것이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사랑·가족·결혼이 오늘날 처한 불행한 운명을 보여준다. 「사랑해서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는 시대착오가 됐다는 것이다. 원인은 현대의 봉건성에 있다. 울리히 벡은 근대 이후의 산업사회를 현대적 형태의 봉건제라고 본다. 즉 사랑·결혼·가족 등의 사적인 영역은 자유와 평등이라고 하는 자본주의 논리가 관철되지 않는 보호지대라는 것이다. 벡은 이를 두고 사랑은 「자본주의 안의 공산주의」라고 부른다. 『사랑과 가족과 개인적 자유 사이에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이며 따라서 사랑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에 매달린다. 『사랑은 전보다 더 힘들지만 더 중요해졌다』 현대인은 신분과 전통의 굴레를 벗어난 대신 자유라는 막막한 선택을 강요받고 있으며 그러한 불확실성을 끝장내기 위해 사랑과 결혼을 원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현대의 신흥종교이며 사랑에 대한 갈망은 현대의 근본주의가 돼버렸다』 그러나, 드디어 찾았다고 닻을 내린 항구는 안전하지 않다. 결혼한 부부는 기대와 달리 서로 전쟁을 벌이고 상처를 입힌다. 짝을 잘못 만나서가 아니다. 개인의 성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현대 사회의 특성이 희생과 헌신이라는 사랑의 덕목과 충돌하는, 근본적인 부조화 때문이다. 『이혼 판결 위에 세워진 오늘날의 바벨탑은 과대평가된 사랑의 기념물이다』

이 책은 사랑·가족·결혼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다. 사랑이라는 지극히 통속적인 주제를 갖고 현대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예리하고 섬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례와 소설·영화·신문기사·각종 통계를 적절히 인용하면서 부드럽고 재치있게 썼다. 딱딱하진 않지만, 쉽게 읽어치울 말랑말랑한 내용은 아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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