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 대우쇼크가 진정되자 증권가는 그동안 용감하게 시장을 탈출한 기관에 「도망자」란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기관은 처한 상황을 들어 따가운 화살을 피하고 있다. 누가 옳은지, 대우사태가 불거진 19일부터 살펴보자.19~28일 투신사를 제외한 거의 대분의 기관투자가들이 투매에 가세했다. 순매액은 증권사 4,877억원, 보험사 2,822억원, 은행 3,100억원, 연기금 585억원 등이다. 순진한 개인들은 4,424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대우쇼크가 발생한 당시 한국의 금융시장은 판이 깨지느냐 마느냐의 절박한 상황이었다. 증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국내외 관계자들이 숨을 죽이고 시장변화를 관찰하고 있었다. 일시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한국 금융시장이 「돌아 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널 수도 있었다. 기관의 매도공세가 고춧가루 뿌리기로 여겨졌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대우문제는 일개 재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의 팔뚝을 잘라내는 대수술이고 따라서 기관조정, 발권력동원 같은 고강도의 시장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많은 경제주체가 인정하는 공통분모였다. 판이 깨지는 것은 공멸을 의미한다.
대우쇼크 때의 기관 투매가 자해행위로 받아들여진 것도 이 때문이다. 개인은 작은 충격에도 크게 흥분할 수 있다. 그러나 기관은 대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정부당국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서로가 살기 위해서다.
대우문제가 수습국면으로 들어서면서 주가가 폭등,지수가 1,000에 육박했다. 주식을 투매한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것이다. 시장이 자기만 살자고 무책임하게 주식을 투매한 「도망자」들을 돈으로 응징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태규 경제부기자 tglee@hk.co.kr
*[기자의 눈] '갈팡질팡' 교육행정
『아니, 가만 있어봐. 이게 아닌데…. ○사무관, 이거 확실한건가?』 29일 오전 교육부 기자실에서 A과장이 대학설립·운영규정 개정안을 브리핑하면서 갈팡질팡하는 바람에 한바탕 해프닝이 벌어졌다.
문제는 석좌교수나 겸임·객원교수도 대학 전임교원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에서 불거졌다. 과장의 애매한 설명에 기자들이 확실히 하라고 몰아치자 그는 『가만 있어봐. 석좌교수는 장관님한테 확실히 메모를 받았고 겸임교수는 어렴풋이 받았는데…』라며 자료를 다시 뒤적이기 시작했다.
이때 사무관이 『다 됩니다』라고 하자 과장은 『시행규칙 조문을 다시 확인해봐』라는 말을 세 차례나 되풀이했다. 이 문제가 갑론을박 끝에 겨우 정리되자 이번에는 기업체 등 원래 직장을 그만둔지 2년이 지나도 계속 겸임교수를 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제기됐다. 이 역시 기자들과의 논란 끝에 『안된다』로 결론났다.
이날 해프닝은 중요정책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 담당 과장의 사소한 착오라는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바로 입법예고를 거쳐 9월중으로 시행할 내용이다. 한달 후면 시행될 국가정책을 입안·집행 당국자가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국민은 무엇을 기준으로 찬반의견을 낸단 말인가?.
공교롭게도 이날자 신문엔 국무총리 산하 정책평가위원회가 교육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중인 「두뇌한국 21」(BK21) 사업을 정부정책의 「6대 실패작」의 하나로 지목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정책수립 과정의 투명성이 부족하고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보완책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 지목 이유다. 정책실패는 바로 이날같은 해프닝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면 과장일까?.
/이광일기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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