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라면 떠나야죠. 세입자 주제에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서울 서초구에 있는 개발제한구역에서 20년간 살아온 조영학(曺永學·39)씨는 최근의 그린벨트 해제논란이 심란하기만 하다. 노부모와 아내, 그리고 딸과 함께 작은 구멍가게를 하며 이곳에 세들어 산지 20년. 하지만 개발이 되면 당연히 땅값이 오를 것이고 집주인이 나가라면 쫓겨나갈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역시 그린벨트 지역에서 16년간 화훼농사를 해온 박만길(朴萬吉·57)씨는 『그동안 살게 해준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해야죠』라고 자조섞인 말부터 흘린다. 대부분의 농군들이 임대계약을 할 때 땅주인이 비워달라면 비워준다는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일명 「하우스」라 불리는 그린벨트내 밀집주거지역에 사는 노동자 조규청(曺奎淸·39)씨. 부인, 두 딸과 함께 이곳에 산지 1년된 조씨도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에서 임대주택을 건설, 공급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어디 우리같은 사람 제대로 신경 써주겠어요』
정부는 22일 발표한 그린벨트제도 개선안이 마련되기까지는 1년이상의 연구와 공청회, 이해 당사자간의 협의가 있었지만 정작 74만 그린벨트 거주민의 62%를 차지하는 세입자들의 목소리는 조금도 반영되지 않았다.
「그린벨트 살리기 국민행동」김혜애(金惠愛·35)운영위원은 『정부가 세입자들에 대한 대책은 전혀 마련하지 않은채 일단 해제하고 보자는 무책임 행정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문제인 까닭에 모든 이해 당사자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환경보전이나 재산권보호 문제만큼이나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는 이들에 대한 고려도 마땅히 따랐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같은 사람들은 어딜 가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남의 땅에 빌붙어 사는 주제에…』박만길씨의 넋두리에는 이마에 파인 주름만큼이나 깊은 삶의 굴곡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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