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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극단 학전 '허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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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극단 학전 '허탕'

입력
1999.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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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한기 개인적 쾌락, 그리고 그것들을 최대한으로 보장해 주는 사이버 공간. 누구도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는 욕망을 갈무리해 주는 거대한 온실은 아닐까? 혹시 감옥일지도?연극 「택시 드리벌」에서 영화 「간첩 리철진」까지, 톡톡튀는 감성을 번득여 온 장진(29)이 이번에는 존재와 언어를 물고 늘어졌다. 극단 학전의 「허탕」.

감옥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철저히 봉쇄된 공간에 감시 카메라까지 설치돼 숨쉴틈 조차 주지 않는다. 그러나 내부만은 호텔을 뺨친다. 침대에서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다. TV 시청은 물론, 전화 사용까지 가능하다.

감옥의 주민은 셋. 상습 사기꾼이자 강간범 장덕배, 혁명을 꿈꾸다 잡혀 온 조직활동가 유달수, 방화살인범 서화이. 모두 무기수. 장은 거친 사회보다 안락한 감옥이 좋다. 조직활동가인 유는 감옥에 안주하려하는 장과 처음에는 티격대다 제풀에 지쳐간다. 서는 남편이 만취해 뱃속의 딸아이를 지우라며 윽박지르자 분에 못이겨, 잠든 남편과 시댁식구를 불질러 죽였다. 지금 그녀는 실어증과 철저한 망각증의 늪에 빠져있다.

극은 마지막에 이르러, 감옥과 세상을 가르던 벽마저 해체해 버리고 만다. 친구와 약속 있다며 마실 가듯 감옥을 나서는 장. 그러나 서화이와 사랑에 빠진 유는 안락한 감옥에서의 안주를 택한다. 해석은 철저히 관객의 몫. 이 시대, 안과 밖을 가르는 전통적 구분법은 유효한가?

「개똥이」 「지하철 1호선」 「모스키토」 등 김민기의 작업을 주축으로 해 온 학전이 외부의 젊은 연출가와 처음으로 손 잡았다. 첨단 장비가 필수적인 작업 특성상 학전을 고집해 온 장진의 의사와 맞아 떨어진 것. 캠코더 5대, 모니터 10대, 스위처(장면 전환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하는 장치) 등 학전이 자랑하는 하드웨어들이 풀 가동한다.

감옥이란 곧 세상이다. 그러나 닫혀있음과 열려있음, 뚜렷한 경계만으로 세상을 구분하려는 자에겐 여기서 아무 것도 읽지 못할, 허탕칠 가능성마저 있다. 그 가능성은 곧 이 극의 매력이다.

수인들이 극히 단순한 언어로 의사를 소통하는 장면, 정반대로 폭포수처럼 언어들을 난사하는 대목 등은 언어연극으로서의 「허탕」이다. 또 3종류의 컴퓨터 그래픽물, 무대의 사각지대까지 관객이 볼 수 있게 한 비디오 카메라 등은 매체연극으로서의 「허탕」이다. 8월 7~10월 31일까지 학전 그린. 평일 오후 7시30분, 토·일 오후 4·7시. 월 쉼. (02)763_8233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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