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주 매클레인의 한 세븐 일레븐 편의점은 「모닝커피」가 굉장히 유명하다. 「넘버 1 커피 인 유 에스 에이」란 현수막을 365일 내걸 정도로 프레시한 커피맛이 일품이다. 워싱턴 DC와 인접한 지역이라 단골손님중에는 정·관계 유명인사들도 꽤 있다.■ 윌리엄 페리 미 대북정책 조정관도 그 중 하나였다. 필자가 워싱턴에서 근무하던 94년 당시 페리조정관은 국방장관이었다. 그는 구수한 커피향을 못잊어 거의 매일 아침 출근 길에 그 편의점에 들렀다. 그가 편의점에 들를때면 항상 경호원 두 명이 먼저 들어와 양쪽 구석에 서 있었고, 페리장관은 종이컵에 손수 커피를 담아 카운터로 가져가서 돈을 내곤 했다.
■ 그 집 단골 중에는 한국대사관의 고위 외교관 한 명도 있었는데 그는 좀 달랐다. 밖에서 승용차 뒷좌석에 몸을 묻고 기다리고 있으면 운전기사가 혼자 들어와 커피를 사서 갖다 주는 식이었다. 다름아닌 편의점 주인이 들려준 얘기다. 한국사람인 나보고 들으라며 하는 소리임이 분명했다. 『페리장관 경호원이나 운전기사가 대신 커피를 사간 적은 한번도 없었나요』라고 머쓱해진 내가 물었는데 주인 대답은 더 뜨끔했다. 『경호원이나 운전기사가 커피 심부름으로 봉급을 받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뒤로 나는 그 편의점을 그냥 지나치는 일이 많았다.
■ 페리장관이 편의점에서 보여준 일상의 모습은 미국에서는 새삼스런 얘깃거리가 될 수 없다. 고위 공직자 일수록 공사구분이 명확하고 자기 본분을 지키는 절제된 자세가 돋보인다. 권위주의를 경계함으로써 진정한 권위를 확보하는 지혜가 그들의 행동거지에 배어있다. 이런 문화,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애초부터 부정부패의 썩은 냄새를 맡기가 힘든 법이다. 우린 지금 어떤가.
/정진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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