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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마음] 아줌마와 할머니의 기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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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마음] 아줌마와 할머니의 기로에서

입력
1999.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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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도 곧 할머니가 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남의 일인양 마음쓰지 않고 살아왔다. 화장대 앞에 앉으면 거울에 나타난 얼굴은 아직도 젊게만 보여서 안도를 했고 버스안에서나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이 아직도 『아주머니』라고 불러주어서 마음상하지 않고 살아왔다.교사의 아내로 살면서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겉멋을 부리고 살 팔자가 아닌 것을 자각하고 남편과 자식들 수발을 재미로 알고 살아왔다. 백화점에서 고급 상품을 하나 덥석 사본 적도 없고 외국여행 한 번 해보지 못했지만 불행하다고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에게는 젊음과 가족이 있고 내 주위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 년전부터 시어머니와 친정부모님을 비롯해 여러 형제, 친척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큰 딸은 시집을 가서 출가외인이 됐고 외아들은 군인이 되어 집을 떠났다. 이제 벌판에 혼자 서 있는 느낌이다.

작년에 결혼한 딸이 임신했다는 전화를 해왔다. 나는 딸의 전화를 받고 기쁨과 함께 가슴에서 서서히 번지고 있는 슬픔의 기미를 의식했다. 조금은 더 여자이고 싶었던, 그래서 투정도 하고 시치미도 떼면서 살고 싶었던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무겁고 우울한 일이었다. 자기를 죽이고 용서와 관용을 베풀면서 대소사를 결정하고 조카들과 손주들의 세뱃돈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가 마냥 따분할 것 같았다. 또 나의 실수를 보고 주변에서 나잇값이나 하라는 핀잔을 할 것같아 두려웠다.

내가 새댁이었을 때 갑년(甲年)이 된 이웃집 노인의 머리를 염색해드리면서 『할머니』라고 불렀다가 된통 야단을 맞았을 때 이해하지 못했던 노인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같다. 늙고 죽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면 늙는 것이 서러워 한사코 젊음을 유지하려고 억지를 쓸 일이 아니라 섭리를 따르면서 멋과 아름다움을 지닌 할머니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다. 맑은 눈빛과 투명한 피부를 내주는 대신 겸손과 사랑으로 마음을 채우련다. 그러다보면 예비할머니의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리라.

/천옥희·광주 북구 일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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