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김이 가장 싫어하는 말중의 하나가「3김」이라고 한다. 국민이 가장 싫어하는 말도 그 말이다. 3김이 그 말을 싫어하는 이유는 서로 다른 3김을 왜 같이 묶느냐는 거부감때문이고, 국민이 그 말을 싫어하는 것은 너무나 비슷한 3김의 정치행태에 대한 염증때문이다.내가 그사람들과 비슷하다니 무슨 소리냐고 세사람 모두 화를 낼 것이다. 물론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씨는 각기 다른 정치역정을 걸어왔고, 한국정치에 미친 공과도 다르고, 개성도 다르다. 그들은 가해자와 피해자로, 패배자와 승리자로, 적과 동지로, 대결하고 경쟁하고 배신하고 손을 잡으며 오늘까지 왔다.
그러나 이제 국민은 3김의 다른 점보다 같은 점을 더 많이 보고 있다. 죽느냐 죽이느냐는 관계였던 과거의 차이는 그들이 짝을 바꿔가며 화려한 결합을 거듭하는 동안 탈색해 버렸고, 한평생 정치일선에서 생존해 온 생명력은 갈수록 비슷해지고 있다. 그들은 각기 자기자신을「정치9단」,「노련한 운전기사」등으로 표현한 적이 있는데 과연 맞는 말이다.
이번 내각제 파문에서도 그들의 공통점이 잘 드러난다. 그들은 노련하다. 그러나 국민에게 진심을 전달하지는 못하고 있다. 내각제 약속에서도 파기에서도 순수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국민도 대부분 순수하지 않았다. 97년 11월 김대중 ·김종필씨가 대통령후보 단일화와 내각제 추진에 합의하면서『우리는 기적과 같은 일을 해냈다』고 감개무량해 할때 그 약속을 전적으로 믿었던 사람은 많지 99년9월 개헌안 공고, 10~11월 국회의결, 12월 국민투표, 2000년4월 16대 총선, 6월 내각제정부 출범...숨가쁘게 이어지는 내각제추진 일정에 대다수 국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약속이 지켜지면 내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막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내각제 추진 약속은 후보단일화로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흥분을 장식하는 샴페인 정도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지킬것이라고 믿지않았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는데, 국민은 실망하고 있다.내각제가 좋으냐 대통령중심제가 좋으냐는 문제와는 관계가 없는 실망이다. 내각제에 반대하는 사람들까지 씁쓸한 얼굴이었다. 김대중대통령은 약속을 잘 안 지키고, 김종필총리는 중요한 고비마다 타협해 왔다는 시중의 오랜 통념이 이번에도 들어맞았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을 착잡하게 하고 있다.
김영삼전대통령의 돌진은 3김에 대한 실망과 혐오감에 결정타를 가했다. 3김시대를 끝내려면 3김 모두 대통령에 당선시켜 주는길 밖에 없다고 농담삼아 한탄하던 사람들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씨가 맹렬한 기세로 정치재개를 선언하자 대경실색했다. 대통령을 지내고도 한국정치를 주무르겠다는 욕심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3김으로부터 벗어날수 있는 날은 언제인가. 후3김시대는 또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3김이 3김이란 말을 싫어하는 것은 이해할수 있다. 3김을 똑같은 줄에 세우고 매도하는 것을 참을수없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그렇게 억울하다면 자신은 어떻게 다른지 국민앞에 보여줘야 한다. 김대통령이나 김총리나 모두 평생을 바친 정치인으로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제는 개인을 위한 설계나 집념을 뛰어 넘어야 한다고 본다. 뛰어넘을뿐 아니라 확실하게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파란만장했던 정치역정으로 볼때 지금도 국민의 의심을 받고, 감동을 줄수 없다면 성공한 정치인이라고 말할수 없다.
김대통령은 내각제 연기를 설명하면서 『김총리가 먼저 연기를 제의해 말을 꺼내기가 한결 쉬웠다』『대다수 국민도 내각제를 찬성하지 않는것으로 알고 있다』는 등의 말을 했는데, 내각제 개헌 약속을 지킬 마음이 없었다는 속셈을 그대로 드러내는 언급이었다. 내각제 추진 연기를 발표하는 김총리의 설명과 표정에서도 약속파기에 대한 미안함을 읽을수 없었다. 그들은 정치인인 동시에 이나라의 대통령과 총리인데, 국민앞에서 했던 약속을 그렇게 처리할수밖에 없었을까.
3김이 아무리 불만을 가져도 국민은 그들을 3김이라 부른다. 그리고 3김과 국민사이에는 불신과 냉소가 흐르고 있다. 국민은 기다리고 있다. 평생을 정치에 바친 노정치인답게 국민에게 감동을 줄수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뛰어넘어 진정한 지도자로 남을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3김과 국민사이에 남은 시간은 길지 않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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