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해외동포문학] '세계화' 세대교체 된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해외동포문학] '세계화' 세대교체 된다

입력
1999.07.27 00:00
0 0

「창 밖에 밤 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50여 년 전 시인 윤동주는 중국 용정에서 나라 잃은 설움을 다독이며 「쉽게 쓰여진 시」(제목)를 썼다.

망명의 문학은 외롭고도 슬픈 것이다. 한국 현대사 100년 동안 조국을 떠나 뿔뿔히 흩어졌던 작가들의 초상은 그래서 안타깝다. 그들은 조국을 그리워하며 소설과 시를 썼다. 미국 뉴욕타임스 북리뷰의 표지를 장식하며 세계문단의 조명을 한 몸에 받았던 재미동포 김은국씨, 일본 아쿠다가와상에 빛나는 이회성씨 등.

하지만 한인 2세와 3세로 이어지면서 동포문학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재일동포 작가 유미리씨의 소설에서, 미국 이민 1.5세대 이창래씨나 한인 혼혈 2세 수잔 최의 작품에서는 조국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고난의 흔적이 옅어지고 있다. 오히려 자신이 발디디고 선 동시대 사람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살아 넘친다.

동포문학의 세대가 바뀐다

동포문학은 망명의 아픈 역사로 시작한다. 3·1운동 직후 빼앗긴 나라를 떠나 독일로 옮겨간 이미륵(50년 사망)씨. 어린 시절의 기억을 아름다운 독일어 문체에 담아낸 「압록강은 흐른다」는 독일 교과서에 실린 자전 소설이다. 미국에서는 「초당」 「서유기」를 썼던 재미 동포 강용흘(72년 사망)씨가 1세대였고, 한국전쟁을 겪고 미국으로 떠난 김은국(67)씨가 전쟁의 체험을 그린 「순교자」로 성가를 얻었다. 그때가 60년대였고 그는 재미 동포문학 2세대에 해당한다.

아무래도 동포문학은 일본에서 풍성했다. 「태백산맥」을 쓴 김달수씨(97년 사망)를 1세대로 시작해, 재일동포 2세로 일본서 태어난 이회성(64)씨, 제주도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가 간난의 한국 현대사를 유장하게 그려낸 김석범(74)씨는 일본에서 한국문학의 힘을 보여준 사람들이다. 그보다 조금 아래 세대인 소설가 양석일(59)씨는 40대 중반에 등단해 일본서 택시운전사로 지내며 겪은 민족차별과 애환을 담은 「택시 광조곡(狂躁曲)」을 썼다. 그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달은 어디에 떠 있나」는 94년 일본내 영화상을 거의 대부분 휩쓸었다.

그리고 동포작가 3세대. 그들은 70년대 개발시대를 거치면서 자발적으로 이민 갔거나 외국서 나고 자란 경우다. 또 혼혈 2세로 자신의 뿌리를 캐는 작품을 쓰는 사람들. 일본의 이양지와 유미리, 미국의 이창래와 수잔 최.

이양지, 유미리, 이창래, 수잔 최

이회성씨에 이어 재일동포 작가로는 두 번째로 100회 아쿠다가와상(89년)을 받은 이양지(92년 사망)씨. 서울에 유학 온 재일동포 2세 대학생이 겪는 조국에 대한 갈등과 실망을 주제로 한 수상작 「유희(由熙)」에서는 조국의 문제가 중심이다. 그는 일본과 「조선」 사이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실존을 가슴 아파한 2.5세대 작가였다.

하지만 유미리(31)로 오면 사정은 무척 다르다. 97년 아쿠다가와상을 받은 「가족시네마」는 부모의 이혼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가 영화촬영을 계기로 재회하는 내용이다. 그의 소설에서는 한국과 한국어의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다만 일본 사회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재일동포들 속에서 「가족 붕괴」라는 문제를 일본 작가들에 비해 좀더 빠르고 예민하게 느낀 정도랄까?

「네이티브 스피커」로 90년대 중반 미국 문단의 주목을 받은 이창래(34)씨는 더 발랄하다. 재미동포 2세 헨리 박을 내레이터로 삼아 소수 민족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정치소설의 스타일로 박진감있게 그렸다. 두 번째 소설 「볼런티어」는 군대위안부 문제를 다룬 작품. 이씨는 한국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한인 혼혈 2세 소설가로 기량을 선보인 수잔 최(30)에 이르면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그는 지난해 한국전쟁과 이민자의 미국 생활을 다룬 「외국인 학생」으로 미국 문단과 언론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에게 한국은 이제 체험이나 추억의 존재가 아니라 역사책에서 발견할 대상으로 바뀌어 있다. 최씨는 『미국 젊은이들의 삶을 그리는데 관심이 있다』고 말한다.

해외 동포 문학의 앞날은?

「동포문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언제까지 「동포문학」인가? 서울대 김윤식 교수는 『동포문학은 한국인이나 한국인 후세들이 해외에서 그 나라 말로 문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창작의 소재가 한국에 관한 것이어야겠지만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은 동포문학의 범주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작가들은 이제 「인공어(人工語)」로 창작한다. 언어는 기호일 따름이고, 이제 국내 작가가 쓴 어떤 작품도 그것이 한국의 문학이라고 할만한 특색은 적다. 마찬가지로 동포문학도 세대가 지날수록 색깔을 잃어갈 것이다』

그러면 동포문학은 아팠던 우리 현대사의 짧은 유산으로 사라질 것인가? 김교수는 그럴 것이고, 또 그러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한다. 『문학에서 동포를 찾기란 상당히 심정적인 것이다. 그런 틀과는 무관하게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와 문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 문학의 성과가 더욱 빛날 것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