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쟁이, 술고래지만 눈물도 많다. 작가주의를 표방하는 MBC 장수봉(50) PD. MBC 프로덕션 7층 일일드라마실. 장PD가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 작업을 하고 있다. 「하나뿐인 당신」 후속으로 8월 작업에 들어가는 일일드라마 캐스팅 구상중이다.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 및 작품·연출상(99년), 4회 아시아 TV페스티벌 드라마상(96년), 한국방송대상(91년) 등 그만큼 수상경력이 화려한 사람도 드물다. 작품성과 완성도를 인정받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만큼 시청률이 따라주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마다 그는 술 한잔으로 가슴을 달랜다.
『사람 냄새 물씬 나는 그리고 휴머니즘이 살아있는 드라마를 만들 겁니다. 이미지에 승부하지 않고 사람들의 진솔한 삶에 초점을 맞추렵니다. 시청자들도 인정해 주겠지요』 22년 PD생활을 관통하는 말이다.
대구에서 작은 아버지가 극장을 운영했다. 덕분에 초중학교 시절, 수도 없이 영화를 봤다. 자연스럽게 영화 감독의 꿈을 키웠다. 『감독하면 굶기 딱 좋다고 아버지가 극구 반대했지요. 의대 간다고 말하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지요』
그는 남들보다 3년 늦게 대학을 졸업했다. 등록금과 용돈을 벌기 위해 시장에서 청과물 좌판을 벌였다. 여기서 사람들과 부딪치며 자연스레 「욕쟁이」가 됐다. 『시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목격했지요. 이것이 작품에 늘 영향을 미치죠. 요즘도 시장에 자주 갑니다』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으로 영화감독 대신 77년 MBC에 입사, 드라마 PD가 됐다. 표재순 , 유흥렬 PD 밑에서 김수현의 「후회합니다」 등 수십편의 작품 조연출을 담당했다.
그가 맨 처음 큐사인을 낸 것은 83년 반공전쟁 드라마 「3840 유격대」. 간부진이 결정해 마음이 내키는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도약의 계기가 됐다. 『전쟁드라마의 연출은 일반 드라마보다 수십배나 힘듭니다. 이 작품 연출하면서 고생도 했지만 제작진 통솔, 연기자 지도 등 많이 배웠습니다』 영화감독의 꿈을 안고 사는 장PD에게는 베스트극장이나 특집극이 체질에 맞았다. 그래서 한동안 단막극만을 연출했다. 휴머니즘을 강조했지만 이적성 시비로 3개월간 방송되지 못하고 7분정도 삭제한 후에야 방영된 「임진강」도 베스트 극장에서 방영된 그의 작품.
그는 스타들의 「명조련사」로도 유명하다. 고두심을 출세시킨 「마당 깊은 집」, 김희애를 원숙한 연기자로 다시 태어나게 한 「까레이스키」, 한석규를 세상에 알린 「아들과 딸」, 오연수를 데뷔시켜 스타로 만든 「춤추는 가얏고」등. 그래서인지 방송가에는 「장PD 사단」이라는 말이 있다. 박근형 정혜선 고두심 김희애 등이다. 『가수가 노래를 잘 해야하듯 탤런트는 연기가 생명이지요. 미모만 있고 연기 못한 사람 쓰지 않아요』 명쾌하다.
욕을 잘하고 수더분하게 생겨 장돌뱅이처럼 보이지만 알고보면 섬세하고 눈물 많은 남자다. 99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때 대학생 큰 딸과 아내가 옆에 있는데도 눈시울을 적셨다. 『수상작인 「흐르는 것은 세월뿐이랴」를 제작하면서 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이 떠올라 울었습니다』
『우선 97년 「방울이」에 이어 두번째로 맡은 일일극을 잘 만들었으면 하고 남은 연출자 생활 동안 따뜻한 드라마를 일관되게 제작했으면 합니다』
대학때 만나 결혼한 아내와 대학생인 세 자녀에게는 늘 미안한 가장이었지만 방송일엔 최선을 다하며 살았노라고 말한다. 『만약 아내가 요즘 여자들 같았으면 이혼하자고 했을 거예요. 참아주는 것만도 고맙지요. 신세대답지 않게 큰 아이가 제 작품을 좋아해서 기분 좋구요』
그는 정년후 회사를 떠나면 평생의 꿈인 영화감독에 도전할 계획이다. 나이 쉰에도 꿈을 간직하고 있는 장수봉PD. 그래서일까. 목소리는 젊은이 못지 않게 카랑카랑했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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