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유혹에 이기는 자제력
골프는 무모한 욕심과의 싸움
자제력 잃을 때 좌절 맛본다
지구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를 처음 정복한 사람으로 우리는 서슴없이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 경을 연상하지만 영국에서는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이끈 존 헌트 경을 먼저 떠올린다고 한다.
53년 영국의 에베레스트 원정대장을 맡았던 헌트 경은 정상을 120㎙ 남겨놓고 에드먼드 힐러리와 세르파 텐징 노르가이에게 정상정복의 기회를 주고 자신은 캠프에 남아 등정을 지휘했다. 그는 스스로 전인미답의 에베레스트 정상에 서고 싶었고 또 그런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었으나 개인의 욕망을 억누르고 캠프에 남기로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자제력은 인류사상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이라는 대위업을 이뤄냈다.
세계의 언론은 에드먼드 힐러리와 세르파 텐징 노르가이를 영웅으로 대서특필했지만 영국에서는 이들 두 사람의 위대한 업적에 못지 않게 개인의 욕망을 억누르고 영광의 기회를 동료에게 양보한 헌트의 인간성을 더 높이 평가했다.
골프만큼 자제력을 요구하는 운동도 없을 것이다. 홀마다 샷마다 항상 욕심과 모험의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19일 카누스티 골프클럽에서 막을 내린 브리티시오픈 최종 라운드 18홀에서의 장 방 드 벨드(프랑스)의 추락은 자제력을 잃는다는 것의 의미를 웅변으로 보여주었다. 18홀에 선 방 드 벨드의 스코어는 경기를 먼저 끝낸 폴 로리(스코틀랜드) 저스틴 레너드(미국)보다 3타 앞서 있었다. 아무도 그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더블보기를 해도 우승할 수 있는 상황에서 방 드 벨드는 드라이버를 빼들었다. 좀처럼 드라이버를 꺼내들지 않았던 그는 마지막 홀을 멋진 드라이버샷으로 장식해야겠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의 드라이버샷은 러프에 떨어졌으나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무리한 투온을 노린 두번째 샷은 관중석을 맞고 갈대숲에 빠지고 말았다. 세번째 샷은 워터해저드에 빠졌고 1벌타를 먹고 날린 다섯번째 샷마저 벙커에 빠졌다. 결국 통한의 트리플보기를 범해 저스틴 레너드 폴 로리와 함께 4개홀 연장전에 들어갔으나 이미 스스로 무너져버린 방 드 벨드는 폴 로리가 카누스티의 새 영웅으로 탄생하는 순간을 옆에서 지켜보아야만 했다.
방 드 벨드는 경기를 마친 뒤 인터뷰에서 『18홀에서 게임을 안전하게 할 수 있었지만 소극적 플레이는 골프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여겨 공격적인 플레이를 했다』고 털어놨다. 방 드 벨드는 욕심과 모험의 유혹을 억누를 줄 아는 자제력과 겸손이 가장 강한 용기임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것 같다.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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