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키 마틴이나 제니퍼 로페즈의 라틴팝이 인기를 끄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미국에서 흑인 다음으로 많은 인구수를 갖고 있는 비(非)백인 인종인 히스패닉계들은 바로 자신들의 것인 라틴음악을 차용한 팝에 열광할 수밖에 없다. 이미 시장이 형성되고 여기에 소프트 웨어가 뒷받침이 된 경우다.미국에서의 라틴팝의 성공에 힘입어서일까. 오랜만에, 그러나 놀랍도록 싱싱한 모습으로 돌아온 박미경의 라틴 사운드 바람몰이가 심상치 않다.
2년간의 미국 생활에서 그녀는 머라이어 캐리,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마이클 볼턴 등 세계적 가수들의 보이스 레슨을 지도했던 세트 릭으로부터 발성법을 지도 받았다. 그리고 수개월 전 귀국하고 나서 댄스 음악으로는 국내 최고 수준의 흥행실력을 갖고 있는 작곡가 김창환에게 곡을 받았다. 서른이 넘은 댄스 가수지만 운동으로 몸을 다져 외려 더 멋져 보이고,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밝은 갈색으로 머리를 물들였다. 노출 패션으로 라틴 댄스를 추는 장면은 TV로 보기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관능적이다.
『20대 후반부터 30, 40대 등 나이든 사람을 위한 노래여서인지 역시 그들로부터 반응이 좋아요. R&B(리듬 앤 블루스) 가수로서의 꿈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올 여름엔 댄스곡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고 싶어요』
그녀는 변신에 성공했다. 어쩌면 변신은 그녀에게는 가장 익숙한 단어일 지도 모른다. 85년 강변가요제에 「민들레 홀씨 되어」로 나와 가창력을 갖춘 기대주라는 평을 받았다. 「화요일에 비가 내리면」이라는 R&B 곡은 그녀의 음악적 지향을 가장 잘 반영한 곡이었지만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 때 그녀는 너무 앞서 나가 있었다. 긴 무명. 그러나 95년 2월 하우스 댄스곡인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변신했다. 클론의 강원래 구준엽이 이들의 백댄서였다. 7개월 후 또 다시 고음의 도입부 코러스가 매력적인 노래 「이브의 경고」를 들고 나와 빅 히트를 기록했다. 노래는 남자를 붙잡고 구질구질하게 「사랑했어요」라며 애걸하지 않았다. 더블 데이트를 하고 있는 남자에게 「까불지 말라」는 마지막 경고를 보내는 도발적인 내용이었다. 파워풀한 가창력과 어울리는 멋진 가사는 여성들의 노래방 애창곡으로 단숨에 떠올랐다. 그리고 2년의 공백. 그러나 「내공」이 있어 공백은 충전의 기회가 됐다.
노래는 물론 안무, 스타일 등 1년간 준비해 온 라틴 댄스곡 「집착」(김창환 작사·작곡)은 「맨 처음 너를 처음 볼 때부터/ 난 니가 너무 좋아 왠지 불안했지/ 어렵게 찾은 내사랑이/ 혹시 실수로 깨질까 두려워서」. 깨진 사랑을 다시 한번 기대하는 노래여서 그녀의 「여성 중심적」 가사에 비해서는 다소 진부하지만 사운드는 한결 풍성해졌다. 그러나 부드러운 보컬이 전면에 부각된 「Do That To Me One More Time」, 이승철과의 듀엣 「시작보다 끝이 아름다운 사랑」에서의 여성적 보컬은 저력이 더욱 깊어졌음을 보여준다. 『이승철씨는 예전부터 참 좋아하는 가수라 부탁을 했더니 한번에 승낙해 기분이 좋아요』라고 말했다. 세련된 R&B적 발성이 댄스곡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언젠가는」, 팝발라드 「남겨진 아픔」도 만만찮다.
『흉성보다 두성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방법을 알게 됐어요. 그래야 소리가 변질도 안되고 듣는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니까요』 소리와 몸이 더욱 다듬어진 그녀가 올 여름을 관능적으로 달구고 있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