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0억원의 예산으로 케이블카, 궤도열차 등을 건설하는 북한산종합개발계획이 84년 가을 발표되자 북한산에는 청천벽력같은 위기감이 감돌았다. 많은 시민과 산악인들은 『서울의 진산을 관광위락시설로 만든다면 자연훼손은 물론 진산의 기능이 손상을 입는다』고 반론을 제기했지만 정부는 강력한 추진의사만을 되풀이했다.당시 많은 시민들과 함께 이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운영하던 작은 점포마저 철시하고 북한산개발계획과 정면으로 맞서 동분서주하던중 다행히 그해 12월초 정부가 계획의 전면 유보를 발표했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과 함께 찾아온 것은 현실의 아픔이었다. 유일한 생계터마저 잃어버린 죄책감으로 집에도 못돌아가는 처지가 돼 북한산에서 임시야영을 시작했다. 어느날 공사장 일터를 알아보기 위해 하산하던 중 북한산 기슭에 파수꾼처럼 버티고 있던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인근 건축공사로 인해 허벅지만한 뿌리들이 잘려나가는 광경을 우연히 목격하게 됐다.
뿌리에서 내뿜는 붉으스름한 수액들이 고통을 토해내는 듯했다. 불과 5개월전 북한산개발 관련 공청회에서도 보호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발표된 바로 그 나무였다. 그런데 보호조치는 커녕 나무뿌리를 절개하는 현실을 접하니 참담할 뿐이었다.
공중전화를 걸 동전조차 없었던 처지라 언론사로 향해 허둥지둥 걸음을 옮겼다. 당시 며칠씩 끼니를 때우지 못해 현기증까지 찾아와 고통스러웠지만 이까짓 고통은 수백년의 뿌리가 잘려나가는 느티나무의 고통에 비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산과 그 느티나무에 관심을 보였던 한 언론사를 먼저 찾아가 구내전화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냉냉한 반응뿐이었다. 결국 다른 언론사를 찾아가 그 사건은 기사로 세상에 알려졌다.
느티나무 보호시설을 만들고 인근 건축이 규제되는 등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나뭇가지가 서서히 죽어가더니 92년 봄에는 아예 둥치째 제거돼 북한산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느티나무는 사라졌지만 느티나무를 살리기 위해 벌였던 당시의 노력은 환경운동에 눈을 뜨게한 잊지 못할 기억이다.
/차준엽·자연의 친구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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