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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칼럼]'청담동갑부'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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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칼럼]'청담동갑부'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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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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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원에게 2억9천만원을 털린 「청담동갑부」는 50대의 예식장 업자로 밝혀졌다.『TV에서 자주 얼굴을 본 사람으로 80억원어치 CD(양도성예금증서)를 갖고 있었다』는 신창원의 말 한마디에 그를 공적(公敵)으로 간주하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민심이 일단 진정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청담동갑부」를 향한 적개심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TV에 자주 나오는 사람이라면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나 대기업 사주일 것이다, 그런 사람이 집안에 80억원대의 씨디와 현금 4천만원을 갖고 있었다면 검은 돈임에 틀림없다고 곧장 단정한 사람들은 개탄하기 시작했다. 신창원보다 「청담동갑부」가 더 욕을 먹었다. 탈옥후 2년6개월동안 신출귀몰하던 신창원이 잡힌것은 어쩐지 애석하고, 고관인지 갑부인지가 신창원에게 털린 것은 어쩐지 고소하다는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가 19일 저녁 TV뉴스에서 생생하게 드러났다. 한 TV는「청담동갑부」가 예식장 업자 김모씨로 밝혀졌다고 보도하면서 예식장 이름을 밝히고, 예식장 구석구석을 보여주고, 예식장 한달 수입이 얼마일 것이라고 추측까지 하더니 『강도당한 사실을 신고하지 않은것은 위법이 아니므로 세무조사를 해봐야 김씨에 대한 처리를 결정할수 있을것』이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김모씨는 강도 피해자이지 부정축재 피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자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상류층 전문 강도를 「대도」란 말로 의적(義賊)화하고, 경찰발표보다 강도의 자기과시를 더 믿고, 강도의 무용담을 통해 상류층 안방을 엿보려는 심리가 일반화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82년 고관대작 집을 주로 털었던 조세형이 『내가 훔친 물건목록을 경찰이 축소발표했다』고 주장했을때 「축소신고와 축소발표」를 필요로하는 세계에 눈을 뜬 국민은 최근 김강룡이란 도둑이 다시 「축소발표」를 들고나오자 고위층·상류층이 관련된 강·절도사건은 으례 축소된다는 고정관념을 갖게 됐다.

이런 뒤틀린 집단심리는 IMF체제를 겪으면서 더욱 악화하여 위험수준에 이르고 있다. 우리가 환란을 겪게 된것은 재벌과 정부와 가진계층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면서도 온국민이 책임을 나눠져야 한다는 인식으로 돐반지까지 들고나와 금모으기 등에 적극 참여했던 국민들은 IMF체제가 부익부빈익빈을 심화시킨채 막을 내려가고 있는 뼈아픈 현실을 보고 있다.

퇴직금도 밀린 임금도 제대로 받지못한채 거리로 내몰렸던 사람들의 가슴을 할퀴는 것은 실직 그 자체가 아니라 더욱 절망적으로 벌어진 빈부격차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만이 낙오된채 IMF체제가 끝나고, 그토록 제거해야 한다고 외치던 거품들은 더욱 기세좋게 살아나 흥청망청 돌아가는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이런 절망감위에 정권교체도 별수 없다는 배신감까지 가세하고 있다. 정권교체로 고위공직에 오른지 얼마 안되는 사람들의 안방에서 수천만원의 현금다발이 쏟아져 나오고, 장관부인들이 고급 옷집을 몰려다니며 로비의혹을 일으키고, 폭탄주에 취한 검찰간부는 공기업 파업을 유도했다는 폭탄선언을 하고, 환란을 극복하기위해 동분서주하던 어제의 경제관료 부부가 은행 구조조정을 막으려는 수억원의 로비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고 있으니, 국민이 어디에 마음을 붙이겠는가.

이런 와중에 내각제 개헌 공약마져 물건너가고 있다. 97년11월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김종필씨가 국민앞에 약속했던 내각제 개헌은 그들의 연대가 야당의 주장하는「야합」이 아니라는 유일한 명분이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보려고 노력한 흔적도 없이 「연기」라는 수순을 밟고 있다.

이나라의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이처럼 덧없이 약속을 파기한다면 앞으로 어떤 「구국의 결단」을 내린들 국민이 믿겠는가. 신당을 만드는 이유를 아무리 그럴듯하게 내세운들 내년 총선전략이라는 이상의 평가를 받겠는가.

「청담동갑부」에 대한 적개심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된다. 국민도 뒤틀린 자신의 심리를 뒤돌아봐야 겠지만,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은 국민의 적개심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말아야한다.

주필

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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