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날라온 옛 친구의 편지. 겉봉을 뜯었다. 친구를 만나는 것 같다. 그의 서투른 글씨가 기억에 새롭다. 그러나 가지런한 컴퓨터의 명조체. 끝내 씁쓸한 마음의 한가닥은 무엇인가.사람들은, 작가들은 하얀 원고지에 만년필이나 볼펜으로 편지와 시와 소설을 썼다. 그 시절 만년필은 참 좋은 선물이었다. 그러나 이제 누구도 만년필의 뚜껑을 열고 원고지 앞에 앉지 않는다. 파워를 켜고 A4 종이를 넣는다.
육필은 화석으로나 남고, 결국은 기억 속에서나 존재할지도 모른다. 만년필은 서명할 때나 유용하다. 시대의 발전과 문명의 진화? 컴세대들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손으로 글쓰기의 추억을 체취처럼 간직한 사람들은 때로 『그게 아니다』고 말한다. 만년필을 손에서 놓고, 원고지를 치우면서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느낀다.
글쓰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90년대 초반까지도 작가들은 컴퓨터에 익숙하지 못했다. 세상 변화에의 적응에 빠른 예외적인 작가들이 워드프로세서의 「마력」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 때도 많은 소설가, 시인들은 「구식(舊式)」을 고집했다. 컴퓨터를 다룰 줄도 모르면서, 시도해보지도 않으면서 『글이 제대로 되겠나』고 용감하게 잘라 말했다.
하지만 사정이 달라졌다. 모두 컴퓨터로 글을 쓰고 있다. 불과 4∼5년만의 일이다. 아직도 원고지로 글을 쓰는 사람은 작가 최인호, 김원우씨 정도다. 시인들의 경우엔 아직 손으로 쓰는 사람들이 많다.
문학평론가 유종호씨는 서너 해 전에 시인으로 등단했다. 늘 마음에 두었지만 실천하지는 못했던 시 쓰기를 그는 매킨토시를 구입해 한글 워드프로세서 연습을 하면서 성취했다. 『컴퓨터에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시의 한 연 전체를 화면에서 볼 수 있어 창작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육필의 고통, 그리고 향수
시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다르지만 작업량이 많은 소설이나 비평 등 긴 글 을 쓰는 작가들은 하나같이 디지털 시대의 「효율성」을 인정한다. 빠른 작업 속도, 편집의 간편함…. 정반대로 아날로그 시절 육필(肉筆)의 기억은 고통스럽다. 백지, 빈 칸만 그득한 원고지 앞에서 머리를 쥐어 짜는 고통과 손으로 쓰고 지우고 고쳐야 하는 육체의 괴로움이 함께 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컴퓨터 글쓰기를 하는 중장년층 작가에게서는 조금 다른 말을 들을 수 있다. 소설가 김주영씨는 1년 반 쯤 전부터 구형 삼성 노트북으로 원고를 쓴다. 그는 대학 노트에 모나미 흑색 볼펜으로 거짓말 조금 보태 깨알 같은 글씨의 소설을 쓰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렇게 쓴 글을 출판사나 신문사에 넘길 때는 다시 원고지에 만년필로 깨끗이 옮겨 썼다. 이런 힘든 작업을 워드프로세서로 상당 부분 해결했다. 아무래도 숙달은 어려워 손가락 두 개만 사용하는 「독수리 타법」이지만.
김씨는 하지만 『문장이 너무 길어진다. 긴장감이 돌고 함축성 있는 문장이 안된다. 글에 잔소리가 많아진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작가들도 술자리에서 『컴퓨터로 글을 쓰면서 문장의 밀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고 전했다. 그리고 작품 한 편을 끝내고도 성취감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단편 소설 100장의 원고지를 송곳으로 뚫고 묶어서 책상 위에 놓았을 때의 성취감을 느낄 수 없다. 원고 부담을 조금 덜 수 있을 때 다시 육필 글쓰기로 돌아가야겠다고 늘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몸을 가진 글과 책?
초점은 다르지만 요즘 출판사 편집자들은 이른바 책의 「육체성」에 대한 고민을 적지 않게 하고 있다. 「디지털 북」 또는 「전자책」이라는 형태로 책이 컴퓨터 파일로 어디라도 전송 가능한 시스템이 되면서 종이책의 역사는 과거가 되어가고 있다. 「종이 책은 멀티미디어가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올바르게 파악해 진로를 모색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고 움베르토 에코는 말했다.
그래서 편집자들은 아날로그의 대표적 상징체였던 책의 가장 미학적인 부분, 또 그것만이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다. 책의 표지를 한지(韓紙)로 써보기도 하고, 표지 제목을 아직은 컴퓨터가 따라올 수 없는 글자체로 달아본다든지, 일부러 활판 인쇄로 글자에 볼륨을 주려 한다. 재생지로 만든 책에서는 환경주의를 표방하는 출판 이념을 읽을 수도 있다.
그럼, 육필의 글쓰기란?
쓰고 또 고쳐 쓴, 흔적이 남아 있는 글쓰기는 작가의 가장 진실한 기록인가? 쉽게 만들고 쉽게 지워 버리는 디지털이 영원히 모방할 수 없는 것. 작문(作文)의 고통이, 시심(詩心)의 흔적이, 퇴고(推敲)의 주저함이 남아있고, 실수까지도 온전하게 보전되어 있는. 그래서 「육체」로 남아 있는. 육필 글쓰기는 디지털 시대 한 가운데서 단순한 추억과 향수가 아니라, 가장 진지한 「몸의 철학」의 하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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