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들은 새 책이 나오면 독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독자는 왕」이라는 식으로 호들갑 떨 때가 적지 않다. 그리고 책을 사보는 많은 사람들은 출판사라면 아이스크림 만들어 파는 회사나 TV를 제조하는 기업과는 다르겠지, 보이는 데서 갖은 아양 다 떨고, 뒷 탈이 난 상품을 들이대면 『내 몰라라』 하는 두 얼굴을 갖지는 않겠지, 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런 믿음이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배반감을 느낄 때가 더러 있다.최근 국내 소설 베스트셀러 순위 10위 안에 든 「사랑하는 당신에게」(소담출판사 발행)가 사실은 1년 반 전 다른 이름으로 나왔던 소설과 거의 똑같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작가 김준식씨는 우리문학사에서 「그대 앞의 초상」이라는 이름으로 이 소설을 냈다가 출판사와 인세 등의 문제로 다툼한 뒤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소담에서 책을 다시 낸 것.
소담출판사 관계자는 『이미 나온 소설인줄 모르고 제작했다』며 책임을 작가에게 돌렸다. 소담은 이 소설에 공을 들여 이미 1억원 가까운 광고까지 집행한 상태. 하지만 우리문학사는 계약을 해지한 적이 없다며 소담에 판매중지를 요청하는 내용증명까지 보냈고, 여차하면 법정 다툼으로 갈 태세다. 우리문학은 또 최근에 책 표지를 소담 것처럼 바꿔 새로 출판까지 했다. 그야말로 독자들을 우롱하고 있다.
이런 일도 있다. 거름출판사는 스테디셀러로 팔리고 있는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 등 3권의 책에 큰 잘못이 있는 것을 지난해 말 발견했다. 그동안 활판으로 제작해 팔았던 책을 컴퓨터에 입력해 다시 찍는 과정에서 오탈자와 문장 중복 등 교정 실수가 생겼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이 사실을 알고서도 대형서점에 나가 있는 책들을 한 권도 회수하지 않았다. 궁색한 답변은 『사람이 모자라서』다.
출판사들은 자신은 기업이기 이전에 문화인이라고 늘 주장한다. 정말 어떻게 기업과 다른지 보고 싶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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