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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움직인 책]13. 열린 사회와 그 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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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움직인 책]13.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입력
1999.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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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사회와 그 적들1938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침공했다. 피와 광기의 시간. 오스트리아 철학자 칼 포퍼는 포연 속에서 절망의 뿌리를 향해 칼을 뽑아 들었다. 그는 「적(Enemy)」이라 분명 못 박고, 43년까지 5년을 꼬박 분투했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서구 지성의 양심선언이자, 절망의 시간에 대한 알리바이다. 파시즘의 뿌리를 학문적으로 구명했다.

「열린 눈」으로 봤을 때, 비로소 인류는 앎의 역사에서 뭔가 유익한 것을 길어 올려 마실 수 있다는 낙관적 역사주의 바로 앞까지 독자를 데려다 주는 책이다. 이를 위해 그는 이른바 인류의 스승, 또는 대사상가에게 딴지를 건다. 거기서 플라톤을 만나면 플라톤을 죽였고, 마르크스를 만나면 마르크스를 죽였다. 그리하여 역사주의 혹은 필연법칙의 음험한 논리를 폭로하자는 것.

플라톤의 「국가」는 평등주의적 정의관의 적이다. 지배자는 지배하고, 노동자는 노동하고, 노예가 노예일 때 국가는 정의롭다는 그 논리는 얼마나 기계론적인가. 가장 선한 자가 통치해야 한다는 플라톤의 「유토피아적 공학」은 바꿔 말하면 닫힌 사회, 즉 독선과 독재의 단초일 따름이다.

헤겔의 민족국가론은 집단과 국가에 대한 숭배였다. 마르크스주의는 복잡다단한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 열린 사회에로의 길을 차단시킨 혐의를 면키 어렵다. 단, 초기 자본주의의 「방만함」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으로서는 격찬받아 마땅하다며 달아 둔 유보조항이 인상적이다.

43년 초판 출판 이래 다섯 번이나 개정판을 내 절차탁마했을 만큼, 그는 이 책에 열과 성을 다 했다. 덕분에 포퍼는 비판적 합리주의의 태두로 세계 지성사에서 입지를 굳히게 됐다.

책의 말미, 「역사는 도대체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명쾌한 논리가 인상적이다. 비록 역사 자체는 무의미하지만 인간의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통찰과 함께, 인간은 예언자로 나서지 말고 운명의 창조자가 돼야 한다는 결론이다.

포퍼는 유대계 철학박사다. 세계 대전 종전 뒤, 그는 『미국 방문을 계기로 서구문명에 대한 회의가 비로소 사라졌다』는 고백을 남겼다. 뒤집어 본다면 이는 또다른 이데올로기가 아닐지. 이 책은 점진적 사회 공학을 주창하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대장전이다. 열린 사회란 각자 스스로 개인적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를 뜻한다.

칼 포퍼 1902년 오스트리아 빈 출생 28년 빈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 2차 대전 직후부터 68년까지 런던대에서 논리학, 과학방법론 강의 94년 사망 주요 저서 「탐구의 논리」 「역사주의의 빈곤」등.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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