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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의 한순간]17. 최하림의 '겨울 깊은 물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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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의 한순간]17. 최하림의 '겨울 깊은 물소리'

입력
1999.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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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림 시집 `겨울 깊은 물소리'「그대들의 리코더는 변화와 성숙의 소리를 내면서/ 시대의 들을 질러가리라/ 쇠스랑같은 연장을 어깨에 메고 가리라」(「그대들이 부는 리코더는」에서)

80년의 5월도 가고, 그래 11월쯤 되는 싸락싸락한 아침이었다. 새들이 울고 젊은이들이 슬픈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그려나가다가, 나는 쇠스랑을 메고 아침 들로 나가는 사나이의 모습을 내 기억 속에서 떠올렸다.

60년대 초 밤차로 서울로 가다가 안양이나 평택쯤에서 더러 만나는 풍경이었다. 평화와 안녕과 생산의 풍경이었다. 고통스럽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60년대 젊은이들에게는 선망의 풍경이라 할 수 있었다. 그 풍경의 배후에는 야산이 있고, 오두막이 있고, 어머니가 계시고 누이나 동생, 할머니들이 있었다. 가난하지만 함께 모이면 행복한 가정이었다.

그때, 나는 왜 그 풍경을 떠올렸을까. 평화와 안녕을 바라서였을까. 생산이나 평화는 말고라도 우리는 모두 안녕을 염려하고 그것을 뼈저리게 바라서였을까. 그런데 쇠스랑은 평화와 안녕의 이미지라고만 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혁명기에 농민의 무기 구실을 했다. 러시아 농민들은 저 쇠스랑과 괭이를 들고 지주집으로, 읍사무소로 달려갔다. 그런 면에서 「쇠스랑 같은 연장을 어깨에 메고」 「시대의 들을 질러가리라」라고 한 것은 무기로서의 연장을 의미할 수 있으며, 연장을 찾는 비가(悲歌)라고도 할 수 있다. 나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러한 양면의 사고를 동시에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서너 달 새를 두고 쓴, 또 다른 시에서 「그대는 눈이 밝아 눈이 밝아서/ 무지막지하게 군화 발자국이 들판을 짓이기고/ 라이보리가 목이 꺾이어 웅덩이에서 시들지라도」(「그대는 눈이 밝아」에서)라고 쓴 적이 있다. 앞의 「들」과 뒤의 「들」은 한 들이고, 군화발에 짓이겨진 라이보리(호밀)가 젊은이들로 하여금 슬픈 노래(리코더)를 부르게 하고, 쇠스랑을 메고 시대의 들을 질러가게 한다. 어느 모로 보나 힘든 풍경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속에는 평화와 안녕의 목소리가 떨려나오고 센티멘털리즘이 넘친다.

최하림 시인은 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했고, 시집 「우리들을 위하여」 「작은 마을에서」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굴참나무 숲에서 아이들이 온다」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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