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19일 공개한 탈옥수 신창원의 「도피 일기장」은 역시 엄청난 폭발력을 갖고 있었다. 당초 예상과 달리 정치인 고위공직자 등 사회지도층 인사와 관련된 「리스트」는 없었다.대신 실명을 명시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교도소에 수감중이거나 탈옥후 도피과정에서 「찍어둔」 교도관과 경찰을 구체적인 정황설명과 함께 지목, 일기장 공개직후부터 파문을 낳고있다.
신의 일기장은 가로 15㎝, 세로 19㎝ 크기의 노트에 실린 43쪽짜리 「완결판」과, 각각 같은 크기로 27쪽, 39쪽으로 된 「습작용」등 모두 3묶음. 그날 그날의 행적을 기록하는 일기 형태라기 보다는,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해 놓은 「도피 수상록」이라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특히 「완결판」은 법의 불평등 교도행정의 문제점 범죄증가의 원인과 문제점 도피중 행적 본인의 성장사 등의 항목으로 나눠 논리정연하게 기록돼 있었다. 중학교 중퇴 학력에다 탈옥수라는 중범(重犯)이 작성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일기장 내용중 적지않은 부분은 자신의 범죄사실과 도피행적을 「물타기」위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들과 가진자들이 (교도소에서) 풀려나가는 창구는 바로 병보석, 형집행정지, 특별사면이다』 『법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사각지대가 아직도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교도관들이 다른 비리에 연루돼 처벌받는 경우는 가끔 있지만, 가혹행위 때문에 처벌받는 것은 보질 못했다』…. 신은 이처럼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 인사와 경찰 및 교도관 등에 대해 짙은 적개심을 드러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너는 악마, 너는 영웅, 이렇게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따스한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는 절대로 그릇된 길을 가지 않는다』 『학교교육보다 가정환경 및 교육이 몇배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신은 자신의 불우한 어린시절을 염두에 둔 듯, 교육의 문제점을 장황하게 늘어놓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도피기간중 10대 가출자와 대화를 자주 나눴고, 그들에게 400만~500만원 정도의 거액을 건네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내가 이 세상에 혼자였다면 벌써 인간이기를 포기했을 것이다』『지금까지 내가 공격을 받는 입장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반대이다』 『그들(경찰)에게 희생된 수보다 많은 인간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만들고 사용법을 알고 있다』 『인간이 망가지면 얼마만큼 망가질 수 있는가를 똑똑히 보여주겠다』 신은 도피기간이 길어지면서 「피의 보복」을 다짐하는 내용을 상당부분 적어놓아 충격적이었다.
신은 그러면서 『범죄자가 무슨 낯짝으로 이런 글을 쓰느냐고 해도 좋다』면서 『나를 의적으로 영웅시하는 것은 원하지도 않고, 그런 소리를 들을 가치나 자격도 없다』고 자신을 규정했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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