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12월의 진주만 공격 직전인 5~7월 미국이 중국을 지원하기 위한 일본 폭격을 검토, 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대통령의 승락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문서들이 미국립 문서보존소에서 발견됐다고 산케이(産經)신문이 15일 보도했다.이 신문은 새로 발견된 문서가 진주만 공격을 「비열한 기습」이라고 비난해 온 미국이 선전포고 없는 일본 공격을 계획했음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이 문서는 태평양 전쟁을 「자위를 위한 전쟁」이라고 주장해 온 일본 보수사학계를 크게 자극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JB355」로 명명된 문서는 1941년 5월10일에서 7월18일 사이 당시 통합계획위원회와 통합본부(JB), 백악관 보좌관에 의한 중국지원계획 수행서 및 허가서 등을 포함하고 있다. 1941년 7월18일자로 패터슨 임시육군장관과 녹스해군장관의 연명으로 「중국에서의 대일 군사행동을 위한 항공기 제공 허락」을 요청한 문서에는 루즈벨트대통령의 「OK, FDR」이란 서명이 들어 있다.
일련의 문서는 중국에서의 대일 군사행동에 대해 미 육해군 기본전쟁협의에서 작성된 「레인보 계획 2호」에 중국군을 이용한 일본군 공격이 제안돼 있어 그 계획에 따를 것이라고 적고 있다. 특히 당시 국민당 정부의 비효율성을 들어 폭격기 뿐만 아니라 파일러트를 의용군으로 투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미얀마·윈난(雲南)성 루트의 방위, 일본 본토 공업지대 폭격 등 3단계의 일본군 공격 방안을 자세히 적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350기의 캐처스 전투기와 150기의 록히드 허드슨 폭격기를 중국에 투입하되 일본 본토 공격을 포함한 2단계는 200기의 전투기와 100기의 폭격기를 이용, 빠르면 9월에 실시할 수 있다고 적었다. 또 오사카(大阪)·고베(神戶)·교토(京都)·도쿄(東京)·요코하마(橫浜) 폭격에는 가볍지만 목조주택이 많은 일본에 효과적인 소이탄을 사용해야 한다는 아놀드소장의 6월11일자 검토보고서도 첨부돼 있다.
그러나 미군의 이같은 일본 폭격 계획은 유럽전선에서 영국이 미국 폭격기를 대량으로 요구했고 마샬 해군참모총장도 유럽전선을 중시, 폭격기의 중국 배치가 늦어지는 바람에 예정대로 실시되지 못한 채 진주만 공격을 받았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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