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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드라마] 세기말 99여름, 서구식 악령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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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드라마] 세기말 99여름, 서구식 악령 등장

입력
1999.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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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천년의 시작을 앞둔 99년 여름. 우리는 드라마에서 또 다시 귀신을 만나고 있다. 12일 밤 10시대. KBS 2TV 「전설의 고향, 호몽(狐夢)」과 이날자로 방영을 시작한 SBS 「고스트」, 그리고 MBC 「마지막 전쟁」 이 시청률 경쟁을 벌였다. 결과는 귀신의 승리. 「호몽」 과 「고스트」가 시청률 17.3%, 26.8%로 일반 드라마 「마지막 전쟁」(15.4%)을 압도했다.「구미호」와 함께 한 시대

또 「구미호(九尾狐)」다. 79~89년에 이어 96년부터 부활한 「전설의 고향」은 19일 한국 귀신의 고전인 「구미호」편을 방영한다. 「구미호」는 시대의흐름과 가치관에 따라 매년 버전업되고 업그레이드 되어 왔다. 그래서 「구미호」는 단순한 귀신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당신을 죽여야 하지만 더러운 것이 정(情) 이군요』(79년 「구미호」 한혜숙) 『여보, 인간되는 소원을 이루지 못했으나 사랑을 준 당신에게 고마워요. 마지막 소원이 있어요. 나를 죽여 현상금 1만냥으로 편히 사세요』(81년 「구미호」 김미숙)

79년판 「구미호」는 인간이 되기 위한 꿈을 이루기 위해 사랑하는 남자와 100일 동안 동침하며 관계를 맺지 않아야 하는 운명의 호녀(狐女). 하지만 단 하루를 남겨놓고 남편이 몸을 범한다. 호녀는 정 때문에 남편을 죽이지 못하고 천년의 한을 남긴 채 다시 여우로 돌아간다.

96년 7년만에 부활한 「구미호」는? 인간을 타락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악마성이 짙어졌다. 새롭게 선보인 데드마스크 분장은 전율을 증가시켰다. 출연자들도 박상아 송윤아 등 비교적 서구적 마스크를 가진 탤런트로 바뀌었다.

99년판 「구미호」. 100일 동안 남자의 사랑을 받아 인간이 되는 길을 선택한 호녀진은 가난한 남편을 만난다. 인간을 불신하는 쌍둥이 언니 호녀비는 극도의 악마성을 드러내는데…. 쌍둥이 구미호로 김지영이 출연, 선과 악을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80년대까지 드라마에 등장한 한국의 귀신들은 원한과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보상자로서의 귀신이었다. 그러기에 드라마 속 귀신들은 원이 풀리거나 억울함이 해소되면 인간에게 복과 교훈을 남기고 떠났다. 「구미호」 역에는 한국적 미인형으로 꼽히는 한혜숙 김미숙 차화연 등이 등장했다.

79~89년 「전설의 고향」 단골 PD였던 KBS 최상식 국장의 말. 『단순한 무서움이나 공포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휴머니즘을 제시하기 위해 귀신 드라마를 제작했다. 79~89년 구미호를 비롯한 귀신은 복수와 공포, 악의 표상이 아니라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이미지의 총아였다』

귀신 드라마들이 잔혹해진다

94년 MBC 미니시리즈 「M」 을 계기로 90년대 귀신 드라마는 큰 변화가 일었다. 서구식 개념의 악령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 인간의 몸에 들어간 악령들이 바로 귀신. 더 이상 신원(伸寃)을 요구하며 인간에게 가르침을 주는 귀신이 아니다. 악과 끝없는 복수의 동일어일 뿐. 낙태, 첨단과학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인간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M」 의 마리(심은하), 남자와 사회에 버림받은 동생의 복수를 위해 불특정 다수를 잔혹한 방법으로 죽여 나가는 「고스트」의 승돈(김상중)이다.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조흥윤 교수는 『생활이 서구화하고 각종 범죄 양상이 잔인해지면서 더욱 더 잔혹성과 악을 강조하는 서구적 개념의 귀신이 드라마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왜 지금도 구미호인가?

산업화와 정보화가 절정을 이룬 지금에도 왜 「구미호」는 여전히 어른거리는가? 문화비평가들은 세기말적 혼돈 현상도, 초정보화에 대한 반동도 아니라고 말한다. 실체 유무를 떠나 시대와 상관없이 시비와 선악, 그리고 애증이 있는 한 사람들의 심리에는 귀신의 이미지가 존재한다고 분석한다. 특히 인간관계 속에서 소외가 심화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악마성을 내세운 귀신은 더욱 기승을 부린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유약한 인간의 약점을 통렬히 드러내주고 복수와 악을 구현하는 귀신들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인간의 이기심과 배신으로 인해 천년의 소원인 인간이 될 수 없는 구미호. 세기말 시청자들은 구미호에서 자신을 보는 것은 아닐까.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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