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한 곳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두 청년이 길을 떠났다. 독립영화제작소 「청년」은 물론 대학(한양대 연극영화과)선후배인 이상인(34)와 정지우(31).「질풍노도」의 「청년」시절, 독립·단편 영화의 세계에서 나와 큰 영화의 마당으로 들어섰다. 앞서 「장산곶매」의 이은 장윤현이 그랬듯 이제 「상업영화」란 길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이상인 감독은 「질주」(제작 한울씨네)를, 정지우 감독은 「해피 엔드」(제작 명필름)를 선택했다. 청춘영화와 치정극. 너무 진부한 얘기는 아닐까. 그러나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영국 켄 로치처럼 『중요한 것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다』라고. 젊은 영화라고 했다. 그 근거로 이상인은 「리듬」을, 정지우는 「시선」을 이야기했다.
청춘의 리듬과 현실로 질주하는 이상인
이상인 감독은 90년 「청년」을 세웠다. 그리고 곧장 장편독립영화 「어머니, 당신의 아들」을 만들어 대학가를 떠들석하게 했다. 그 일로 구속까지 됐다 93년 풀려나 미국으로 떠났다. 그때부터 그의 눈은 늘 20대 초반 젊은이들에게 가 있었다. 사회와 타협도 해야 하고, 진보와 진부가 혼재하는 존재들. 영화에 그들의 현실을 담자. 75년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을 생각했다. 영화 관습에 완전히 기대지 않으면서 이 땅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현실과 고민을 그들의 「감성과 리듬」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때문에 「질주」(8월말 개봉)는 90년대 말 청춘 자화상이다. 개성과 재즈연주같은 리듬으로 『네 멋대로 살아라』라고 말하면, 『그래, 내 모습같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열린 구조의 젊은 영화. 이상인 감독은 「질주」를 「대안영화」로 규정했다. 스타와 장르 중심의 작은 할리우드식 기획상품이 아니다. 그렇다고 어둡고 우울하고 느리고 자기세계에 갇힌 실험·예술영화도 아니다.
코헨형제나 타란티노처럼 그 중간지점에 서있는 재기발랄하고, 독특하며 날카로운 영화. 그래서 4명의 남녀 아르바이트생(이민우 김승현 송남호 남상아)으로 출발하는 「질주」는 그들만의 세계에 갇히지 않고 「들고찍기」로 들락날락하는 인물들의 현실과 상상의 에피소드까지 교차시키며 젊음 속으로 질주한다. 이상인 감독은 스스로 『전선(戰線), 틈새에 서 있다』고 했다.
지루하지 않은 일상을 묘사하려는 정지우
드러난 것의 이면을 드러내기. 정지우는 이미 단편 「생강」 「사로」에서 일어난 가난과 살인에서 그것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바람 피는 아내(전도연)와 실직한 남편 그리고 정부의 이야기 「해피 엔드」(25일부터 촬영)도 분명 단순한 치정극은 아니라는 예감이다. 『현모양처가 아닌 여자를 한꺼풀 벗겨보면 우리가 그를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 없는 이유, 상황, 심리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담는 그릇으로 최민식 전도연의 스타 시스템, 멜로라는 익숙한 장르를 선택했다. 솔직한 일상성에 담긴 세기말의 인간 관계, 가족문제를 영화적 허구를 통해 긴장감있게 드러내려는 욕심 때문. 일상을 보는 그의 눈은 낭만적이지 않다. 노골적이고 냉정하다. 『사실 인정하기 싫어하지만 누구나 갖고 있는 이런 솔직한 시선이야말로 젊음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홍상수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정지우는 『그보다 훨씬 따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인간에 대해 긍정적이라는 얘기다. 「청년」시절(93~95년)에는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결혼식 비디오, 정치인 홍보비디오를 찍었다. 주위에서 『영화는 아직 멀었지만, 결혼식 비디오는 예술의 경지』라는 소리도 들었다. 정지우에게 영화는 타인과 「대화의 장」이다. 이제 그는 소수가 아닌 대중에게 「해피 엔드」로 말을 걸어야 하고, 그 반응을 기다려야 한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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