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의 「축구박사」정종덕(55)감독. 그는 그라운드가 아닌 관중석에 석고상처럼 앉아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분석하는 것이 주요 일과다. 보통땐 김철(34)코치에게 재량권을 주고 대회 일주일전에야 그라운드에 내려와 선수들과 땀흘리며 한몸이 된다.63년 창단, 3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건국대 축구부는 90년대들어 「대표팀 사관학교」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멀리 김재한 김진국 고정운 황선홍 유상철까지 가지 않더라도 재학중인 신병호 이영표를 보면 『아, 그렇구나』라며 머리를 끄덕이게 된다.
「사관학교장」이라는 「명예훈장」을 받은 정종덕감독이건만 그의 시작은 언제나 「무명」이었다. 내로라하는 고교선수들의 목표는 대학축구의 양대산맥인 연세·고려대에 진학하는 것. 거액의 스카우트비는 물론 네임밸류에서도 뒤지는 건국대로서는 자연히 「고만고만한」선수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종덕감독은 이들을 마치 연금술사처럼 진흙을 털어내고 보석으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정종덕감독은 자신이 「요술쟁이」나 「뻥튀기 장수」가 아니듯 가능성있는 선수들을 잘 관리한 것과 본인들이 성실하게 훈련한 덕분이라고 말을 돌린다.
그가 20년 가까이(80년) 건국대감독을 하면서 「금과옥조」처럼 귀에 못이 박히도록 선수들에게 되뇌이는 말들이 있다. 「어거지 축구」를 떨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훈련에 임하라는 것. 덧붙여 선수생활에 방해가 되는 것(흡연 등)은 하지말고 자신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그래서 그가 배출한 대표선수들은 수명이 긴것인지도 모른다.
정종덕감독의 철학은 두가지. 선수들이 존경심이 우러나와 감독말에 절대복종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고, 팀 운영을 마스터해야 해야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축구감독을 12명(코치 포함)의 단원을 둔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비유하는 그는 『승리의 특허는 없다. 다만 정확한 데이터를 제시하며 독려해야 효과적인 지도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년을 3년 앞둔 정종덕감독에게 나머지 절반의 성공은 무엇이냐고 묻자 『축구감독을 한 것에 만족한다. 앞으로 1~2차례 더 우승하는 것』이라며 너털 웃음을 지었다.
/ 여동은기자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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