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들이 돈 버는 데 재주가 없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예외 없는 규칙이 없다고, 국제무역론의 아버지인 데이비드 리카르도와 거시경제학의 창시자인 존 메이나드 케인즈 두 사람은 돈을 많이 벌었던 것으로 유명하다.특히 이 중에 케인즈는 주식시장에 투자를 하여 개인적인 부를 많이 축적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재무 담당 교수(버사:Bursar)로 있던 케임브리지 대학의 킹스 컬리지(King's College)의 재산을 엄청나게 불려주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케인즈가 주식시장에 대해서 한 이야기가 있다면 이것은 단순히 이론만 아는 대학교수의 탁상공론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케인즈는 그의 주저인 「고용, 이자,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의 12장에서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것은 미인대회에서 누가 우승할 것인가를 알아 맞추는 것과 같다』고 설파하였다.
이 때 케인즈가 말하는 미인대회는 소수의 심사위원들이 당선자를 결정하는 식의 미인대회가 아니라, 당시 영국 신문에서 유행하던 미인 고르기 대회로서, 100명의 아가씨들의 사진을 놓고 그 중에 가장 미인인 6명의 아가씨를 독자들로 하여금 고르게 한 다음, 가장 높은 득표를 한 6명의 아가씨를 맞추는 독자에게 상금을 주는 대회였다.
케인즈의 주장에 따르면 이 대회에서 우승을 하려면 자기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후보들을 골라서는 안되고, 「평균 의견」(average opinion)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후보를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케인즈에 따르면 이 방법도 사실은 부족하다는 것인데, 이것은 이 대회 응모자들이 모두 이 점을 고려하여 과연 평균의견이 무엇인가를 추측하여 답을 써 낼 것이므로, 과연 평균 의견이 무엇일까에 관한 평균 의견, 그리고 나아가서는 그것에 관한 평균 의견까지도 제대로 추측해야 이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예를 통해 케인즈가 지적하려 했던 것은, 다른 시장에서와는 달리 주식시장에서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이야기하면, 주식 시장의 모든 참여자들이 주가가 오를 것 (혹은 내릴 것) 이라고 기대하고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 그러한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일반 경제의 상태나 상장된 기업들의 경영 상태와는 관계없이 주가가 오를 수(혹은 내릴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 일어난 주가의 급등-급락 현상도「기대」라는 것이 주식시장에서 얼마나 강력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가를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이와 같은 분석에 기초하여, 케인즈는 주식 시장이라는 것이 장기적인 수익을 노린 투자보다는 단기적인 수익을 노리는 투자를 장려하게 되며, 이에 따라 발생하는 신속한 자본 이동은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 실물 경제에 대한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였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도 주식 시장의 확대를 통해 기업들의 채무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희망에 주식 시장의 급속한 발달을 원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장기보다는 단기를 중시하는 주식 시장이 그 속성상 과연 우리가 선진국들을 따라잡기 위해 아직도 필요한 엄청난 양의 장기 투자를 가능케 할 것인가는 의문이다.
게다가 지금 주식 시장에 들어 있는 「거품」이 미국 주식시장의 하락 가능성 등 국제 경제 불안 요인들에 의해 터지기라도 하면, 이제 겨우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경제가 다시 침체에 돌입할 수도 있는 것이다. 주식 시장의 진정한 속성과 역할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볼 때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