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경영인 퇴진」보고서가 발표된 12일 이후 여의도 한국경제연구원 사무실에는 두 종류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전경련 부설 연구원이 낸 보고서로 그룹 이미지 피해가 막심하니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항의전화가 한 종류요, 『한경연이 오랜만에 「밥값」을 했다』는 격려전화가 또 다른 종류다. 전자는 재벌, 후자는 시민단체 전화다.사실 이 보고서에는 일부 재벌기업이 「펄쩍 펄쩍」 뛸만한 반(反)재벌적인 문구가 있는게 아니다. 보고서 가운데 「실패경영진을 퇴진시키고, 구조조정을 주도할 신진경영진을 대폭 보강한다」는 당연한 말이 들어있을 뿐이다.
시장경제체제에서 경영에 실패한 경영자가 퇴진해야 한다는 것은 경영학 교과서에 나오는 아주 원론적인 지적이다. 한경연은 소위 책임경영제체의 확립을 강조했을 뿐이다. 경영능력이 없는 대주주(오너)는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고 주주로서의 역할만 하면 된다.
전문경영인의 책무는 주주 이익의 극대화에 있다. 전문경영인이 이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한 주주는 경영에 간섭하면 안된다. 이 원칙은 재벌이 출연한 한경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연구원에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연구원의 연구활동에 부당하게 간섭하면 안된다는 얘기다.
재벌마다 자체 경제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벌들이 한경연의 연구활동에 시시콜콜 간여할라치면 한경연을 둘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재계가 한경연의 보고서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자격지심(自激之心)에서 일까, 아니면 「오너(총수) 불패론」의 자신감 때문일까. 전문경영인의 영역을 송두리째 부정하려는 재계 분위기가 안타까울 뿐이다.
/박정규 경제부기자 jk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