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깊다」와 「손이 크다」를 합치면 뭐가 될까. 난 「통이 크다」라고 생각한다. 통 큰 여자를 만나면 나는 괜히 신이 난다. 통 큰 남자를 별로 못봤기 때문이다.그 분은 나이 찬 딸이 여럿 있다. 앞으로 그 딸들을 결혼시키고 노모를 모시고 살 앞날을 생각하면 가게가 엄청 잘 돼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할 때이다.
나의 알량한 계산에 의하면 그렇다. 그 분이나 나나 돈버는 데는 소질이 없는 동화작가이지만. 그런데 그 분은 세가 저렴한 4층으로 널찍한 가게를 얻어 책방을 옮기면서 좋아라고 가게면적의 반을 뚝 잘라 어린이도서관을 만들었다. 개관식 때 가보았다가 난 책방 옆에 달라붙은 도서관을 보고는 기겁을 했다.
『아니, 가게서 파는 책을 여기 도서관에도 놓으시면 어떡해요. 그럼 책이 안 팔리잖아요』 그랬더니 정작 책방 주인은 차분하게 웃으면서 나를 진정시켰다. 『괜찮아.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책도 사는 거야』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래 가지고 장사가 돼요. 이런 일은 돈많은 사람이 해야지, 왜 선생님이 하시는 거에요. 말도 안돼요』 나 혼자 흥분하고 걱정을 하다 축하떡 얻어먹고 간신히 진정을 했다. 그 분의 아름다운 의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 분의 꿈은 모든 아이들이 좋은 책을 읽고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커주는 것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뭐든지 할 각오가 돼있고 실천하는 분이다. 나와는 달리 그 분의 걱정은 책방의 위치가 너무 외져서 아이들이 찾아오기 어렵지 않을까, 도서관의 서가가 빈 곳이 많아서 아이들이 실망하면 어쩔까, 도서관 의자와 책상이 얻어온 것이라 낡고 삐걱거려 아이들이 불편하지 않을까. 그런 것 뿐이었다.
나는 어떤 통 큰 남자도 자기 서점의 반을 잘라 무료 도서관을 차라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통 큰 여자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내가 만난 통 큰 여자는 분당에 있는 가을글방에 가면 누구나 만날 수 있다. 갈 때는 어린이 도서관에 기증할 예쁜 책을 한 권 들고 가면 더 좋겠다.
/임정진(동화작가·서울 강남구 대치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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