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생애」 와 「손짓」은 어떤 드라마였지? 정답은 이런 제목의 드라마는 없었다는 것이다. KBS의 「왕과 비」와 MBC의 「보고 또 보고」의 원래 제목이었을 뿐이다. 작가 정하연과 임성한이 지어 온 이 제목은 빛을 보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가제(假題)에 불과했다.드라마의 제목은 누가 짓고 어떻게 결정할까? 제목은 매우 중요하다. 첫 인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작가나 PD들은 좋은 제목의 조건으로 드라마 내용을 포괄하고 극전반을 관통할 수 있는 것 처음 들어도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것 발음하기 쉬운 것 등을 꼽고 있다.

드라마의 제목은 작가가 우선 지어온다. 다음 작가의 가제를 놓고 담당 PD와 책임연출자(CP), 국장 등이 참여하는 회의에서 최종 결정한다. 하지만 합의가 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 이럴 경우 드라마국 모든 PD들의 의견을 청취, CP나 국장이 채택한다. 제목을 결정하는 비율을 보면 대체로 작가 50%, 담당 PD 20%, CP 20%, 국장 및 중역진이 10% 정도.

「왕과 비」는 작명에만 2개월 당초 작가 정하연과 제작진 일부는 작가가 지어온 「바람의 생애」를 주장했다. 그러나 일본 NHK 대하 사극 「꽃의 생애」와 흡사한데다 협객물 냄새가 나 배제됐다. 다음 제목 후보로 등장한 것이 「왕조의 계단」. 세조가 왕권을 강화하며 조선의 기틀을 확고히 했다는 점에서 지지자가 많았으나 추상적이라는 이유로 탈락. 이렇게 2개월 동안 논의된 제목만 20여개. 결국 KBS드라마국 윤흥식 주간이 세조와 이후 성종시대를 아우르는 「왕과 비」로 낙점했다.

이런 산고(産苦)의 제목도 있지만 반대로 SBS 주말극 「파도」 는 아주 쉽게 결정된 경우. 작가 김정수가 어려운 세파를 견디며 살아가는 어머니와 자식간의 갈등과 사랑을 포괄할 수 있는 「파도」를 가제로 가져오자 김한영 PD가 5분만에 동의했다.

「장미와 콩나물」은 시청자 작품 드라마 제목이 난항을 거듭할 때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현상 공모라는 아이디어도 동원된다. 시청률 수위를 달리는 MBC 주말연속극 「장미와 콩나물」이 바로 시청자 작품. MBC 제작진은 드라마 내용과 기획의도, 전개상황, 작가와 PD의 말 등을 인터넷에 띄워 제목을 공모했다. 「결혼과 인생」 「여자에게 결혼이란」 등 800여건을 접수, 드라마 PD들이 투표해 이중 10개를 채택했다. 그러나 담당 CP가 강력히 주장, 11번째로 합류한 제목이 「장미와 콩나물」. 11개를 다시 인터넷에 띄워 시청자 투표를 한 결과 「장미와 콩나물」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미혼시절이 장미에 비유된다면 결혼 후에는 콩나물 신세지만 콩나물이야말로 생활의 진정성을 상징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드라마 제목과 인기는 상관 관계가 있을까? 4월초 끝난 MBC 「보고 또 보고」는 보고 또 본 결과 50%대의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종영한 SBS 「미우나 고우나」 는 시청자들이 미우나 고우나 봐주었으나 10%대의 저조한 시청률을 보였다. 올초 방영된 SBS 「백야3.98」은 시청률이 저조해 3.98%의 시청률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마저 낳기도 했다.

하지만 제목과 인기는 관련이 없다고 제작진은 말한다. MBC 이재갑 CP는 『인기와 제목이 관련있다는 이야기는 시청자들의 농담에 불과하다. 물론 제목이 인상적이면 좋겠지만 제목이 좋다고 시청률이 오르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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