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 책임이 없는 20대는 재기발랄하나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한다. 40·50대는 원숙하되, 생활에 쫓겨 새로움을 선뜻 추구할 수 없다.중간자는 괴롭다. 나아가자니 튀는 것 같고, 처지자니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직무유기 같다. 이제 30대 연출가들이 풀 가동 한다. 지금껏 띄엄띄엄 이뤄져 오던 그들의 연극 작업이 이렇게 한꺼번에 연극계 전면을 장식한 예는 없었다. 구호를 내걸지 않았기에 더 의미를 띠는지 모른다.
극단 오늘의 기획 무대 「삼자외면」, 극장 혜화동 1번지의 「공포연극제」, 극단 연우무대의 「풀코스 맛 있게 먹는 법」. 기발한 착상과 접근법, 다양한 형식 등 호기심을 부추기는 요소들로 가득하다. 모두 옴니버스 식으로 편당 30여분의 상연 시간.
「삼자외면」
30대의 끝자락에 선 세 연출가들이 서로를 의식 않고, 한 번 해보고 싶은 대로 만든 무대. 그래서 「외면」이다. 특기할 만한 점은 이들이 지난 시절 이른바 민족극 계열에서 잔뼈가 굵은 연출가들이라는 사실.
첫번째 무대 「테이블을 둘러싼 의혹」은 온갖 인간관계에서 유발되는 다양한 말의 재미를 극대화한 작품. 광고 카피, 농담, 세인들의 관심을 불러 모은 사건들에 대한 잡담 등 온갖 수준의 담론 양식은 즐거운 부조리극이 된다. 이수인(38) 연출. 두번째 「노을」. 하루를 자명종 시계에 비유, 숨돌릴 틈 없이 급박해졌다 잦아드는 현대인의 일상을 그린다. 시간관리에 대한 강박관념이다. 김상열(38) 연출. 세번째 「변신」은 권태를 달래보려는 세 남자 이야기. 문득 그들에게 하나의 시체가 온다. 공포에 떨던 그들은 시간이 지나자 시체를 갖고 살인놀이를 벌인다. 그마저 시들해져 음담패설 놀이로 접어 든 그들에게 남은 것은 서로에 대한 적의 뿐. 결국 그들은 서로를 죽이지만, 그것마저도 놀이였다. 맨 마지막, 그들은 『다음에는 더 잔혹하고 잔인하게 놀자』라는 말을 남기고 헤어진다. 위성신(36) 연출. 22일까지 소극장 오늘·한강·마녀. 화~목 오후 7시30분, 금·토 4시30분 7시30분, 일 3·6시. (02)765_4891
「공포연극제」
공포란 자신과 적대적인 미지의 것에 대해 인간이 갖는 가장 원초적 감정이다. 극장 혜화동 1번지가 「공포연극제」라는 이름까지 내건 이 작품에는 모두 5편의 극이 등장한다. 15~8월 1일은 제 1탄 세 편. 독일의 현대극작가 귄터 아이히의 51년 작 「꿈」이 첫 작품. 현대 사회의 악몽 5편이 그 내용. 단편극 속의 단편들인 셈이다. 김광보(35) 연출. 「귀신의 똥」은 배가 고파 자신의 똥을 먹은 거지 때문에 자존심 상한 귀신이 그 거지의 식구를 괴롭힌다는 내용. 박근형(36) 연출. 「다림질 하는 사람」은 한 여인을 광적으로 흠모하던 세탁소 다림질꾼이 그녀를 영원히 소유하기 위해 그녀를 죽여 그 주검을 다림질한다는 환상의 극이다. 손정우(38) 연출.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성렬(37) 연출의 「심야특식」은 섹스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 여자의 정체를 알게 된 어느 택시 운전사가 결국 핸들에 머리를 쳐박고 죽는다는 내용. 그 여인은 귀신이었다. 최용(36) 연출의 「아빠」는 살부(殺父) 욕구와 어머니에 대한 성적 충동을 소재로 현대 한국사회의 인성 해체를 그린다. 소극장 혜화동 1번지에서. 15~8월 1일 「꿈」 「~똥」 「~사람」, 8월 5~22일 「심야특식」 「아빠」. (02)761_3375
「풀코스 맛있게 먹는 법」
30대가 기괴함의 세계만 파고드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극단 연우무대의 이 작품은 특유의 집단창작 방식이 한껏 발휘된 예쁜 소품들로 꾸며졌다. 20, 30대 여성극작가로 이뤄진 작가집단 「창작일기」의 작품 네 편을 연우의 젊은 네 연출가가 극화, 그야말로 풀 코스로 즐길 수 있다.
첫 코스 「Happy Birthday Two」. 20대부터 시작한 지순한 사랑이 50대에도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김종연(33) 연출이다. 두번째 「새빨간 거짓말」은 남녀가 어떻게 섹스에까지 이르는 지를 말한다. 박정의(32) 연출. 셋째 「틀에 박힌 이야기」는 남녀의 사랑이 무덤덤한 일상이 되기까지의 과정을(연출 최우진·31), 네번째 「어느날 갑자기」는 현대인의 부조리한 상황을 밀폐된 공간으로 이입시킨다(연출 민복기·32).
이들 무대는 이제 연극이 특정 연출가의 카리스마가 아니라, 집단평의회적 시스템 체제로 들어섰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자면 하루 3편 정도의 개성적 무대를 한꺼번에 즐긴다는 재미가 크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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