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포이동 포이초등학교를 다니는 혜정이(12)는 남다른 아픔을 갖고 있다. 혜정이의 아픔은 부모가 청각장애자라는데 있지않다. 서툰 말투로 인해 받아온 오해와 편견의 벽이 가슴깊은 곳에 응어리로 자리잡고 있다.정상인인 혜정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3년정도 늦게 말을 배웠다. 부모는 물론 오빠(18) 언니(16)까지 모두 청각장애인인 집에서 혜정이는 수화를 먼저 배울수밖에 없었다. 혜정이가 쳬계적으로 듣고 말하기를 체험한 것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5살때부터. 그러나 집에서는 수화를 쓸 수밖에 없었던 혜정이가 유치원에서 한마디 두마디씩 배우는 것으로는 말이 금방 늘 수도 없었다. 친구들로부터 놀림의 대상이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혜정이의 생활은 순탄할 수 없었다. 말을 제대로 못한다고 여전히 왕따신세를 면키 어려웠고 정확한 어휘구사가 되지않아 주변어른 들에게 「예의없는 아이」라는 핀잔을 받기 일쑤였다. 『친구들이 놀려 울고 들어올 때가 가장 마음이 아팠다』는 혜정이 아버지 변승일씨(42)는 수화로 딸의 사연을 털어놓으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아름다운 손짓」이라는 청각장애자들을 위한 월간지를 발간하는등 장애자의 권익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정작 자신의 딸을 위해서는 아무일도 해줄 수 없었다는 자책때문인 듯했다.
부모가 모두 청각장애자인 가정은 전국적으로 3,000여가구. 이들 가정의 아이들은 혜정이와 비슷한 성장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재활과 사회적응교육을 실시하는 청음회관 사무국장 이정섭(李貞燮·46)씨는 『선진국의 경우 청각장애인을 부모로 둔 정상인 자녀들을 위한 조기교육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전무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어른들의 무관심이 계속되는 한 제2, 제3의 혜정이는 여전히 침묵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녹용기자 i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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