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박완서 지음
여백, 295쪽, 7,000원
종교 잡지나 신문에서 종교인들이 「무명(無明)」의 대중을 가르치는 글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잘 쓰여진 법문(法文)이나 복음(福音)과 설교에는 깊은 감동이 있다. 한줄기 깨달음을 얻는 경우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좀 더 쉽게 쓰여졌으면, 한가한 늦은 오후에 이웃의 누군가와 마주 앉아 차 한 잔 앞에 놓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듯 신앙을 들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초보」 신앙인들은 특히 이런 바람이 간절하다. 소설가 박완서쯤이라면 그런 글을 기대해 볼만 하지 않을까?
박씨는 96년부터 98년 말까지 가톨릭 「서울주보」에 한 주일의 복음을 곰곰히 생각하고 쓴 「말씀의 이삭」이라는 글을 연재했다. 최근 그 글을 한데 묶어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라는 묵상집을 냈다.
요즘은 뜸하지만 박씨는 신문이며 잡지에 적지 않은 글을 썼다. 청탁에 못이긴 글이 많겠지만 항상 매우 읽을만한 수준이라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매력이길래? 한국전쟁의 피난 경험을 그린 박씨의 자전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는 배고픔을 못이겨 빈 집에 들어가 쌀알을 찾던 청년시절 그의 모습이 나온다. 남의 재산 훔치는 것은 죄겠지만, 빈 집만 가득한 전쟁터 서울에서 그게 뭐 대수롭기나 할텐가. 하지만 박씨는 자물쇠가 채워진 그 집 담을 넘어갈 때의 두려움과 죄스러움에 몸을 떨었다.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서는 욕망을 버리려는, 하나라도 비워보겠다는 「마른」 노년의 풍경이 그려졌다. 박씨의 소설과 산문에서는 때묻은 일상을 가슴 저리게 반성하는 대목을 늘 만날 수 있다.
묵상집은 박씨의 그런 반성과 자기 고백의 정점(頂點)이다. 130여 편의 짧은 글은 예수의 행적과 성경을 통해 삶을 돌이켜보는 사색, 일상에서 얻는 종교의 깨달음이 담겼다. 언제나 다정하게 느껴지는 문장을 읽으며 친근하게 작가의 믿음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그의 글에서 유독 가난한 이들에게 「저질렀던」 일을 털어놓는 대목이 눈에 띄는 이유는 뭘까? 가난한 결혼식을 제쳐두고 호사스러운 혼인식 하객으로 발길 돌렸던 일, 백화점에서는 물건 깎자고 한 마디 못하면서 노점상 할머니에게 몇 십 원 깎아보려고 덤비던 일.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우리에게 불필요한 것을 버릴만한 쓰레기통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요」 마더 테레사만큼 낮은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을 그는 뉘우쳤다. 읽는 사람은 가슴이 서늘하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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