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한 몸이 된 지는 이미 오래. 누구보다 빠른 「콩트르 아탁(기습선제공격)」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싶다. 그리고 내 인생중 한번은 튀고 싶다.여고생 검객 이정은(18·중경고3). 어쩌면 이미 몇 번씩이나 튄 신세대일지 모른다. 지난해 4월 세계유소년펜싱대회와 4월 세계청소년펜싱대회에서 연거푸 우승을 차지한 것부터가 그렇다. 그것도 펜싱 3개 종목중 가장 공격적이라는 「에페」에서. 중1때 펜싱하는 오빠들이 멋있게 보여서 칼을 잡은 소녀가 한국 펜싱의 기둥이 됐다.
그는 경기장에서도 눈에 띈다. 168㎝ 57㎏이라는 다부진 몸매와 가수 양파를 닮은 외모부터가 시선을 끈다. 강심장은 예전부터 소문이 났다. 한참 선배인 선수들도 벌벌떠는 세계대회에 나가서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오히려 쉬는 시간에 낯익은 외국선수들과 칼로 톡톡 장난을 치고, 감독선생님에게는 『우승하면 짬뽕을 사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일단 칼만 잡으면 자신감이 생기니까.
하지만 흰 도복과 검은 철망투구를 벗으면 평범한 여고생이 된다. 인기 두엣가수 「컨츄리꼬꼬」의 탁재훈을 좋아하고, 부모님 몰래 짙은 화장을 하고 친구들과 쏘다니기도 한다. 경기에 방해된다고 머리를 못기르게 하는 바람에 초코브라운색 긴 가발까지 하고 다닐 때도 있다.
요즘은 19일 열리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하느라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갈 수 있기때문이다. 대학진학도 포기했다. 대신 「펜싱 명가」광주서구청에 들어가기로 이미 계약서에 사인까지 해놓았다. 『대학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이 때로는 부럽기도 해요. 놀다보면 「내가 왜 운동을 시작했을까」하고 후회하기도 해요. 하지만 어쨌든 펜싱에서 한번은 튈 생각이라 큰 후회는 없어요』. 바람을 가르는 신세대 검객다운 시원시원한 말이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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