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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설의 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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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설의 한 순간]

입력
1999.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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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단편 「도드리」시인들은 연애를 하면 연시를 남긴다. 그렇다면 소설가들은? 그게 좀 힘들다. 연소설이라는 말이 없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시는 한 순간의 강렬한 인상만으로도 만들어지지만 소설은 그렇지 않다. 소설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하고 치밀한 구성도 필요하다. 아무래도 감정 곡선이 연애와는 맞지 않다. 연애소설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연애소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읽는 자들의 연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치밀한 계산 아래 인물과 장소와 사건이 배치된다. 그러니, 사랑에 푹 빠져있는 사람이 쓰기엔 좀 적당치 못하다.

97년에 발표한 단편 「도드리」는 그런 무모한 기획 아래 쓰여진 소설이었다. 그때의 내가 마음에 두고 있던 그녀는, 다행히 시보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던 터라 만날 기회는 자주 있었지만 쉽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마음을 돌려볼 양으로 집에 틀어박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비둘기를 두려워하고 핑크 플로이드를 즐겨 듣는 그녀의 모습을 소설 속의 여주인공에 슬쩍 투사시키고 거기에다 국악곡인 「도드리」에 얽힌 이야기를 섞고 함께 갔던 데이트 코스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었다.

소설을 다 쓴 후, 프린터로 뽑아 그녀에게 건네주고 돌아오던 날, 밤늦은 시간이었음에도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의 첫 마디는 『연애소설을 쓰셨더군요』 그녀가 정곡을 찔러오는 바람에 나는 솔직히 털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 『네, 연애소설을 썼습니다』 그날부터 진짜 연애가 시작되었다. 순서가 좀 뒤바뀌긴 했지만, 별 문제는 없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여전히 내 직장 동료이며 또한 내 소설의 변함없는 첫 독자이며 동시에 나의 아내이기도 하다. 때론 무모함이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하는 모양이다.

/소설가·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창작집 「호출」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99년 현대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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