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아, 어미를 원망하지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어미는 과도기에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느니라』정월(晶月) 나혜석(羅惠錫·1896~1947).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유학생이었으며 서양화가이며 소설가, 시인. 「이혼고백서」를 공개발표해 봉건사회의 도덕과 인습에서 비롯된 남녀불평등 문제를 제기했던 최초의 페미니스트.
나혜석의 일대기를 장편소설화한 「백년의 고독」(전2권·찬섬 발행)이 발표됐다. 작가는 「애마부인」으로 잘 알려진 조수비(57)씨. 사후 50여년동안 후세에 잊혀진 인물로, 간혹 방탕한 삶을 살았던 자유여성 정도로 인식되어 왔던 나혜석. 작가 조씨는 그러나 나혜석을 사회적, 경제적으로 혜택받은 입장에서의 엘리트 여성의 관념적 여성해방론을 극복하고 가부장적 사회제도와 남성의 의식에 도전한 인물로 그리고 있다.
소설은 37년 주위의 냉소와 비난 속에 정신적·물질적으로 피폐해진 나혜석이 만공(滿空) 스님이 주지로 있던 수덕사 견성암으로 친구 일엽(一葉) 스님을 찾아가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내려라, 비야. 계속 내려라. 부처님 찾아가는 내 육신 말끔히 씻기게 내려라』 그의 회상 속에 수원 부호의 딸로 태어나 동경여자미전 유화과로 유학, 이광수 등과의 친교, 약혼자 최승구의 죽음으로 인한 자살미수, 고국에 돌아와 변호사 김우영과의 결혼, 파리에서의 그림 공부와 최린과의 밀애, 그리고 「이혼고백서」사건 등 불꽃같은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91년 「미완의 바람」으로 한국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조씨는 이후 8년간 이 작품의 집필에 매달려왔다. 조씨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관련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자료수집을 했다』며 『딸자식들을 생각하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심정으로 썼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소설은 철저한 사실에 바탕해 나혜석의 생애를 생생하게 재구성했다.
작가가 나혜석을 보는 관점은 그의 「이혼고백서」의 구절, 「생명의 속삭임」인듯 하다. 『세상의 모든 조소, 힐책을 감수하면서 이 십자가를 등지고 묵묵히 나아가려 하나이다. 광명인지 암흑인지 모르는 인종과 절대적 고민 밑에 흐르는 조용한 생명의 속삭임을 들으면서 한번 더 갱생으로 향하여 행진을 계속할 결심이외다』
책 말미에는 「이혼고백서」 등 나혜석의 글과 연보, 참고문헌 등 관련자료도 풍부하게 붙여놓았다. 그의 고향인 수원시는 올해 12월 「나혜석 거리」를 준공할 예정이며 동상 건립과 200여평 규모의 생가복원 사업도 벌이고 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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