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칸타타필립 들레리스 지음·임헌 옮김
세종서적, 344쪽, 7,500원
미스터리 소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정말 흥미진진하면서 지식욕구까지 해결해주는 소설은 얼마만에 한 번 만날 수 있을까? 최근 10년 사이 이런 요구에 감당할 작품을 꼽아 봐라. 몇 편이나 생각나는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먼저 기억에 떠오른다. 이 소설을 패러디한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도 인기가 좋았다. 두 작품 모두 영화로 만들어져 책 못지 않은 재미를 안겨 줬다. 서양 중세의 종교적 엄숙주의, 「웃음」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감정 표현에 대한 억압이라는 지극히 현학적인 주제. 에코의 소설은 많은 사람들이 책 내용의 상당부분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서도 그 속에 흠뻑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의료문제, 법률 소송 등 사회 문제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치밀하게 그려내는 존 그리샴. 이상 심리와 여성문제 등을 기괴한 모습으로 묘사하는 스티븐 킹. 매력 만점에 수준 높은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국내외를 꼽아야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최근 출간된 「마지막 칸타타」도 이런 격조를 갖춘 미스터리에 충분히 값할만한 소설이다. 프랑스의 변호사인 작가는 아직 무명이어서 그가 에코나 스티븐 킹 만한 소설을 계속 써낼 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서양음악사를 소설의 재료로 삼았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책에는 바흐에서 모차르트, 베토벤, 바그너, 말러, 베베른으로 이어지는 독일을 중심으로 한 서양음악 거장의 역사가 한 줄로 꿰어있다. 그리고 바흐가 남긴 마지막 푸가 「음악으로 드리는 헌정」의 비밀과 연쇄 살인사건이 베일에 덮힌 채 한 꺼풀씩 벗겨져 나간다.
프랑스 국립음악원을 졸업하는 피에르 파랑은 산술적으로 잘 짜여진 완벽한 악보를 쓰는 것으로 이름난 바흐의 음악을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재현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 그는 주제가 되는 몇 개 음을 가지고 조성을 바꾸어 계속 발전시켜가는 음악형식 푸가를 컴퓨터로 재현하는데 도전한다. 하지만 「음악으로 드리는 헌정」에 대한 컴퓨터의 해석 결과는 「바흐의 실수」. 파랑은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경찰이 나서지만 그런 중에 두 건의 살인사건이 더 일어난다. 우여곡절 끝에 바흐 푸가의 비밀을 풀어내는 것은 파랑의 동료인 주인공 래티시아. 음을 숫자로 만들기를 즐겼던 바흐는 마지막 푸가 속에 자신이 작곡한 칸타타가 숨겨진 곳을 알려주었고, 그 칸타타는 개신교가 지배하던 18세기 바흐의 말년에 그가 가톨릭에 귀의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바흐의 「음악으로 드리는 헌정」, 모차르트 「C단조 피아노 환상곡」(쾨헬 475번), 베토벤의 「작품 18번」,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말러의 「아듀」, 베베른의 「파사칼리아」 등 바흐의 푸가 주제음을 계속 이어받았다고 작가가 지적하는 작품들을 들으면서 읽으면 재미가 더할 것이다. 허구나 무리한 추측도 없지 않지만 작품 내용의 상당 부분이 음악사의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하고 있어 교양을 넓히는데도 그만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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