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2년차 국정기조는 「민주주의·시장경제·생산적 복지의 병행발전」이다. 여기서 「생산적 복지」는 공적 부조를 장기실업문제 해결 및 지식기반화에 필요한 노동인력 공급과 연결시키는 영국의 「일로 통하는 복지」나 독일의 「공적 부조에서 취업으로 이끄는 복지프로그램」과 유사하지만, 완전히 동일할 수 없다. 복지수준이 낮은 한국의 처지에서는 취약집단의 보호에도 특별한 강세가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이 점을 감안한 「생산적 복지」는 취약집단의 생활보호를 한층 더 강화해 나감과 동시에 지식기반 산업화와 환경친화적 경제발전을 촉진하는 방향에서 계층간 사회적 평등과 세대간 환경권적 평등을 증진하는 21세기형 복지로 정의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정책수단은 노동능력의 개발, 자활의지와 상부상조의 지원, 실질고용의 창출, 모험·창업정신의 진작, 건강권과 환경권의 실현을 기하는 사회투자적 수단과 시장친화적 방법이다.
조밀한 생산적 복지체제만이 지식기반·신용경제에 필수적인 새 인력, 내수시장, 창의적 지식, 사회적 자본(신뢰와 연대감)을 제공하고 역으로 힘찬 지식기반 경제만이 생산적 복지에 풍족한 복지재원을 제공할 수 있다.
힘찬 경제와 튼튼한 생산적 복지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공급과 수요측면을 둘 다 중시해야 한다. 공급측면에서는 투자의욕을 고취하는 기업세·부과금 경감 및 창업촉진 정책이 요구되는 한편, 수요측면에서는 근로의욕과 학습의욕을 높이기 위해 중산층과 서민의 재산형성을 도와주는 근소세·부과금 경감정책이 필요하다.
이 말은 생산적 복지체제 구축에 필수적인 두 가지 원칙을 함축하고 있다. 첫째는 공급·수요 양측면을 중시하는 정책원칙이다. 둘째는 구조변동기에 필수적인 적자재정의 원칙이다. 공급측면과 수요측면의 동시적 조세인하를 위해서는 대규모의 적자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뒤 경제팽창으로 세수초과가 발생하면 적자는 어렵지 않게 해소할 수 있다. 따라서 적자 때문에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공급·수요 양측면 중시원칙은 블레어와 슈뢰더의 원칙이기도 하다. 수요측면도 동시에 중시해야만 수요측면에 속하는 생산적 복지의 기반이 넓어진다. 또 적자재정의 원칙은 오늘날과 같은 비상한 구조변동기에 일정한 범위 내에서 불가피한 것이다.
가령 최근 발표된 독일의 긴축정책조차도 그 목표는 「신규채무 증가억제」이다. 기존의 재정적자는 감수한다. GDP 대비 20% 미만의 적자재정은 건전재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 5%에 불과한 우리의 재정적자는 얼마간 더 늘어나도 안전하다.
그러나 한국에는 불행히도 위의 두 원칙과 반대되는 신자유주의적 공급측면 우선원칙과 균형예산 망집(妄執)이 우세하다. 바로 이 두 경향이 생산적 복지의 확대를 가로막고 있다. 생산적 복지는 일단 공급측면 우선정책과 적자탈피 조급증의 관점에서 「선심」정책으로 취급받아 일정한 수준 아래 갇혀 버리기 때문이다.
생산적 복지를 위해 세수 초과액 5조원을 다 써도 모자라는 판에 그 반을 서둘러 빚 갚는 데 쓰기로 한 것도 균형예산 망집이 빚어낸 것이다. 이로 인해 중산층·서민생활 안정정책은 최근 확정된 독일정부의 「독일혁신」21세기 미래프로그램에 비교할 때 미약하고 불공정하기 짝이 없다.
한국 중간소득자는 올해 겨우 43만원, 즉 독일의 약 2분의1, 2002년에는 4분의 1의 경감혜택밖에 받지 못하고 근소세경감률은 중간소득자(9.4%)보다 고소득자(10.8∼17.9%)가 더 크기 때문이다. 독일정부는 천문학적 재정적자 속에서도 공급·수요 양측면 중시원칙에 입각, 2001년 기업세 25%인하와 소득세인하 4개년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균형예산 망집과 공급측면 우선정책을 속히 탈피해야만 생산적 복지체제 구축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황태연·동국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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