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경자」라는 이름이 싫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화가 천경자씨는 「모던아트의 멋쟁이 동인들」이라는 산문에서 『그 무렵 내게 부딪친 인생바람이 거세어, 비단이 좌악 찢어지는 것 같은 내 이름의 음색을 바꿔 볼까 고민했다』고 쓰고 있다. 그는 『좀 편히 살 수 있는 이름은 없는가』하고 동료들에게 얘기를 꺼냈다가 『이름을 바꾸면 당장 절교하겠소』라는 으름장을 듣고는 개명을 포기했다고 한다.■모던 아티스트인 그에겐 그림 제목도 중요했다. 『나는 「미인도(美人圖)」라는 식의 제목을 붙이지 않는다』 91년 4월 「미인도」 위작 시비가 일었을 때 그는 단호하게 말하며, 왜 위작인가를 하나하나 지적하기 시작했다. 「미인도」는 옛날 작가에게나 어울리는 구식 제목이라는 의미였다. 그의 그림 제목은 「청춘의 문」 「누가 울어」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등 대부분 현대적 정서와 멋을 지니고 있다.
■당시 그는 거의 고립무원의 상태에 있었다. 「미인도」를 소장한 국립현대미술관은 신경질적으로, 화랑협회는 갈팡질팡하면서도 각각 진품이라고 주장했다. 평단도 대부분 침묵하는 가운데 「미인도」가 가짜라는 글을 공개적으로 발표한 평론가는 김삼랑씨 뿐이었다. 검은 삼태기를 뒤집어 쓴 것처럼 부자연스런 머리형태와 불안하기 그지없는 꽃장식, 무의미하게 비어 있는 어깨 부분 등이 균형미와 색채, 필세에서 분명히 가짜라는 것이었다.
■최근 위조범 권춘식씨는 자신이 「미인도」를 위조했다고 진술했다. 8년을 끌어온 수수께끼가 풀릴 한 가닥 희망이 비친 것이다. 이제는 진위를 가려야 한다. 우선 권씨에게 「미인도」를 그려보게 해서 위조 역량이 있는지를 검증했으면 한다. 그것으로 판명이 안될 경우, 지금이라도 작가와 미술관의 명예를 함께 구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하나의 방법은 「미인도」를 태워 없애는 것이다. 그림이 아까울 수 있다. 그러나 작가가 가짜라고 주장하는 그림을 전시하는 불명예 보다는 낫다. /박래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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