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너무 썩었다. 공직사회를 중심으로 어느 한 구석 썩지않은 곳이 없을만큼 우리 사회의 부패도가 심각하다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인식이다. 그러나 정부나 국회가 하는 일을 보면 부패를 척결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부패를 막아보자고 시민단체들이 입법을 청원한 부패방지법이 8개월째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있으니 말이다. 빨리 처리해달라고 채근하는 사람도 없다.
부패가 이슈가 될 때마다 해당범죄의 처벌을 가중하는 특별법들이 제정되고,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을 공개해 변동사항을 국민이 감시하게 하는 제도까지 도입됐다. 그러나 부패방지에 별 효험이 없는 것같다. 인천 북구청 세무공무원들이 지방세 수입금을 잘라먹은 사건이 일어나자 부정축재 재산 환수를 규정한 몰수특례법까지 생겼으나 이 법은 한번도 적용된 적이 없다. 미비점을 보완하자는 논의도 들어본 일이 없다.
그래서 시민단체들이 들고나온 것이 부패방지법이다. 특별검사제를 도입해 수사의 성역을 없애자, 내부고발자 보호제도로 공직사회 비리고발을 유도하자, 돈세탁 금지규정을 두어 검은돈의 흐름을 막자, 비리 퇴직자의 관련업체 취업을 금지시키자, 예산부정 고발자 보상제도로 국고손실을 막자, 뇌물준 사람도 받은 사람과 똑같이 처벌하자는 것등이 이 법안의 취지다. 국민회의는 특검제 부분을 삭제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수용해 지난해 12월 국회에 법안을 제출했으나 아직 심의조차 착수되지 않고 있다. 공동여당 한 쪽이 신중론을 취하고, 야당은 반대하기 때문이라 한다. 특검제 문제가 갈등의 핵심이다. 그 문제로 집권당 총재대행이 물러났어도 앙금이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법안 통과전망은 캄캄하기만 하다.
예정대로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적어도 씨랜드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부비리 고발자 보호와 보상이 법적으로 보장된다면 화성군수가 아무리 간이 커도 부하직원들에게 불법적인 영업허가를 요구할 수 있겠는가. 사회복지과장이 아무리 파렴치한들 업주에게 돈을 받아 부하에게 전해주겠는가. 뇌물받은 사람이나 준 사람이나 똑같이 처벌한다면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비리 퇴직자에게 몇년동안 관련업계 취업을 금지시키면 아무리 뇌물을 밝히는 사람이라도 몸조심을 하게 될 것이다. 돈세탁을 할 수 없으면 주기도 받기도 어려워져 그만큼 억제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이 유리알처럼 투명한 사회를 이룩한 것은 국민 모두가 정직해서가 아니라, 효율적인 부패 통제장치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는 공무원이 뇌물죄나 공금유용으로 기소되면 불법취득 재산을 동결해 재산권 행사를 금지시키고, 재산몰수형이 선고되면 즉각 국고에 환수한다. 싱가폴과 대만은 엄격하기로 유명한 부패 통제장치와 제도로 세계에 소문난 청결국가가 되었다. 73년에 제정된 대만의 부정공무원 처벌법은 직권을 이용해 뇌물을 받는 공무원은 최고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규만 엄격한 것이 아니라 운영도 찬바람이 날 만큼 엄정해 딴 생각을 먹을 수가 없다고 한다.
부정부패는 줄을 선 사람들의 차례를 뒤로 밀어내고, 정당한 절차를 밟아 올라온 사람들의 기회를 박탈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공공요금과 물가와 사회적 비용을 올리고, 국가와 기업의 금고를 축내 국가경제에 엄청난 해악을 끼친다. 국제사회에도 부패라운드가 제정돼 부패한 나라는 무역에서 소외당하는 시대가 됐다. 투명성이 국가경쟁력의 요건이 된 세상이다. 장관이 공개석상에서 격려금 봉투를 받고, 고위공직자 부인들이 호화 의상실을 드나드는 나라의 경쟁력이 얼마나 될지 걱정이다. 나라일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한번 물어보고 싶다. 부패를 척결할 의지는 있느냐고. 국가 투명도 50위 밖의 기피국가로 전락해가는 오늘의 현실을 알고나 있느냐고.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