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심은데 꽃 피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만큼 재미난 것이 어디 있습니까』고향에서 「시골 할아버지」가 되겠다고 나선 한 율사의 귀거래사이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공소유지 담당변호사였고, 인권보호와 소외된 계층의 권익신장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조영황(趙永晃·58·사진)변호사. 그가 30년 가까운 변호사 생활을 마감하려 하자 주변의 반응은 다양했다.
『한참 일할 나이인데 이해할 수 없다』며 따지는 사람에서부터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니냐』며 걱정하는 사람까지. 그러나 그는 『노년을 적극적으로 살기 위해 힘이 있을 때 정리해야 한다』며 『전문직엔 정년이 없다고 은퇴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함정을 파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조변호사는 내년 봄 「낙향」하기 위해 지난 달 서울 사무실을 정리했고 고향에 오두막도 지었다. 그는 그곳에서 「텃밭도 가꾸고 정자에 누워 구름 흘러가는 것도 보며」 지내고 싶다고 한다.
조변호사는 지난41년 전남 고흥에서 출생, 부산 금성중학을 나와 중졸학력으로 69년 제10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색적인 경력을 갖고 있다. 변호사생활을 마감하는 방식도 그의 이력만큼이나 독특하다.
조변호사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88년3월 대법원이 그를 부천서 성고문사건의 공소유지 담당변호사로 임명하면서부터. 공소유지 담당변호사란 고소·고발 이후 검찰이 불기소한 재정신청사건에서 법원이 검사 대신 임명하는 일종의 특별검사다. 그래서 조변호사는 우리나라 특별검사 제1호로 불리운다. 당시 그는 처음으로 피고인을 위한 변호사 입회를 허용하는 선례를 남겼다.
그에 대한 또다른 평판은 어린이운동가. 10년 넘게 어린이운동을 펴온 그는 현재 어린이독서회 이사장과 새천년어린이선언 연대모임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조변호사는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른이 어린이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법조인은 동심을 가져야 하며, 그래야만 사물을 편견없이 보고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조변호사는 어쩌면 법복을 입게 될지 모르겠다. 법원 가을 인사에서 시군법원 판사로 임명해 줄것을 신청해놓은 상태이다. 조변호사는 권위를 앞세우기 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판결을 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남모르게 장애아단체에 기부금을 내고 자녀들의 결혼식땐 축의금을 받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빚을 안지려면 안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것도 자신을 길러준 고향에 대해 조금이나마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글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사진 홍인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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