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까맣게 타고 며칠동안 물 한 번 못 묻힌 모양새다. 휴대폰와 수첩을 넣은 비닐 봉투 하나 달랑 들고 숨가쁘게 사무실에 뛰어 들어 온다. 서울역에서 며칠간 노숙한 사람 같다. 인터뷰를 요청한 지 두 달 만인 8일에야 그를 만날 수 있었다.박수용(37) EBS PD. 「수리 부엉이」의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경남 진양의 부엉이 마을에서 5개월 동안 살다 이날 상경했다. 참 만나기 힘든 PD다.
『부엉이를 포착하기가 어려워 산 속에서 밤 낮 안가리고 먹고 자야 했기 때문에 휴대폰 통화도 못했어요』 그는 이처럼 자연 다큐에 미친 사람이다. 몸은 지쳐 보이지만 수리 부엉이의 생태를 만족스럽게 포착한 때문인지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PD생활 불과 7년. 20~30년 노장들에 비해서는 일천하다. 하지만 방송계나 시청자들은 그의 이름 앞에 「자연 다큐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입사 2년 만에 제작한 「반디를 보셨나요」에서 보여 준 생생한 반디의 생태를 통해 고도성장에 상실되어가는 자연의 의미를 일깨웠다. 또 황소개구리가 뱀을 잡아 먹는 충격적인 장면 등을 포착, 국내외 시선을 모았던 「한국의 파충류」, 물총새의 자연스런 일상을 잡아 잔잔한 감동을 전해줬던 「물총새 부부의 여름 나기」는 그가 95년 1년간을 투자한 결실. 그리고 97~98년 2년 동안 러시아 연해주 등을 돌아다니며 세계적으로 근접 촬영이 힘들다는 시베리아 호랑이를 카메라에 담는데 성공한 「시베리아, 잃어버린 한국의 야생동물을 찾아서」를 제작했다.
『시베리아에서 라조 산림지역에서 촬영 도중 조연출이 러시아 호랑이를 목격하고 놀라서 「찌그라 찌그라」 만 외쳤지요. 무엇을 찍으라는 건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찌그라」가 러시아말로 호랑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통탄을 했습니다. 뱀에 물리고 밤에 작업하다 다치는 일은 부지기수였지요. 그러나 한 번 촬영에 빠지면 부상당한 지도 잘 모릅니다』 천성인가 보다.
그가 힘들어 하는 것은 이같은 물리적인 상황이 아니다. 『가정과 인간관계 단절이 가장 어려워요. 1년 동안 아내와 아이를 못보고, 명절때 부모님 찾아뵙지 못하는 것이 제일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사람 할 일이 아니죠. 세살 된 딸 아이는 저를 보면 아직도 서먹서먹해 하지요』
그러나 7년간의 열정은 헛되지 않았다. 시청자들은 진한 감동을 주는 그의 다큐에서 땀과 끈기를 인정했다. 96년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 99년 TV 교양부문 작품상을 받았다. 한국 프로듀서협회 상을 비롯, 그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각종 상이 이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박PD의 작품을 인정해 주는 곳은 세계 제일의 다큐 제작사인 미국의 디스커버리사와 영국 BBC 등 유수의 방송사들. 이들 방송사는 「물총새 부부의 여름나기」 「시베리아…」 등을 수입 방영했다.
서울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시민운동을 하다, 92년 EBS에 입사했다. PD가 된 이유는 간단하다. 『긴 시간을 두고 작업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고 그것이 자연 다큐 제작이었을 뿐입니다』
다큐관은 지극히 원론적이다. 『동물이나 생물상태를 생태계의 왜곡없이 자연스럽게 찍는 것입니다. 앞으로 살쾡이 족제비 등 단일한 동물들을 깊이있게 다루는 것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보수와 조건이 좋은 경쟁 방송사의 스카우트 제의를 왜 거절했느냐는 질문에 『다큐는 오랜 시간과 많은 투자, 그리고 모험을 인정해 주어야만 제작할 수 있다』 라는 말로 대답했다.
임신 9개월의 EBS 동료 PD인 아내와 딸아이를 3개월 만에 보게 된다며 빨리 인터뷰를 끝내자고 조른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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